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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제설명1

예지예정

by aparke 2024. 2. 3.

†     예지예정

Ω 예정
인간의 입장에서 본 예정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 예정
아들 안으로 들어오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으므로 아들을 믿으면 구원 안으로 들어오고 아들께로부터 벗어나면 구원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끝까지 아들 안에 있어 구원을 받을지를 이미 아신다.
아들이라는 기준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 따라서 예정은 전적으로 피조물 각자의 선택이다. 예정은 아들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가 아들을 영접하여 예정 안으로 들어와 죄사함을 받았으나 도중에 아들을 거부하면, 그는 하나님의 예정에서 벗어난다. 아들께서 곧 구원이시기 때문에, 아들 안으로 들어오면 기준 안으로 들어오고, 아들께로부터 벗어나면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아들 안으로 들어온 자의 선택을 존중하셔서 그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올 수 있도록 때에 따라 은혜를 부어주시나, 그것 역시 본인의 자유의지 내에서 부으시는 은혜이므로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만을 예정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들로 미리 아신 자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실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택정하사 결국은 영화롭게 하실 것이므로, 최후에 영화롭게 된 자들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도중에 아들을 거부할 자라면 그는 교회 안으로 부르신 자일지라도 예정하신 자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 자만을 예정하시므로 도중에 아들을 거부할 자들 곧 아들의 통치를 거부할 자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예정과는 관계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아들 안에 있는 누구든지 구원하신다. 예지예정: 끝까지 아들 안에 있어 결국은 구원을 받게 될 자들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뜻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아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누구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셨다. 누가 아들을 영접하고 아들의 통치에 끝까지 복종하는 자가 될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다. 이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들 안에 있는 한, 나는 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을 벗어나는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시려고 정하신 예정에서 벗어나게 됨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들께로 들어오는 자들은 아들 안에서만 정하신 구원으로 들어오고, 아들께로부터 벗어나는 자들은 아들 안에서만 정하신 구원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아들 안으로 들어오면 예정 안에 있음을 알게 되고, 아들 밖으로 벗어나면 예정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누가 끝까지 아들 안에 있어 정하신 구원을 받게 될지는 하나님께서만 아시거나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천사들만 알 것이다. (혹 알려 주신 자들이 있다면. 천사들도 좋은 씨와 가라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보아 좋은 씨가 구원얻을 자들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비유 가운데 하신 말씀이기에 완전히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알 수 없다. (혹 안다면 성령하나님 안에서 알 수 있을까. 주 예수님께서도 유다의 배신을 아셨다.) 최종결과는 하나님께서만 아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개인의 의지이며, 하나님께서는 주신 자유의지에 간섭하시지 않으신다. 은혜를 주셨을 때 그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 자들을 미리 아시고, 이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이지,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미리 누군가를 정하시고 강제적으로 그들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관계 없이 아버지께서 임의로 정하셔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아들을 믿고 영접하여 그 형상을 본받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이들을 우리는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아들을 본받게 하신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세상으로 돌아갈 자들도 있다. 이들은 원수가 뿌린 가라지들이며 아버지께서 심으신 알곡이 아니다. 물론 이들도 아들을 시인했으므로 처음에는 죄사함을 받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성령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삶을 육체로 마친다면, 아버지께서는 공의의 법에 따라 이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것으로 미리 아신 자들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유다가 결국 아들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던 것처럼, 이들이 결국 아들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면 어떤 피조물도 살 수 없다. 모든 피조물들은 아들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전부 범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자만 살고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는 자는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는 자만 살고, 은혜를 거절하는 자는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자에게만 은혜를 부으신다. 은혜를 받지 않을 자들 곧 죄를 사랑하고 어차피 아들을 거부할 자들에게는 몇 번 기회를 주실 수는 있겠으나, 은혜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은혜를 부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때문이다. 우리가 은혜를 거절했거나 받지 않을 자들이라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을 것이나, 우리가 은혜를 받을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면 내가 은혜를 거절할 자들을 멸시하며, 내가 은혜를 받아들인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만약 그런 마음을 가진 자라면 나는, 내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보다 은혜를 받은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므로, 그 교만함으로 인해 곧 죽게 될 것이다. 아들을 버리신 사랑을 모두가 거절했지만 나 홀로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영광을 받으실 분은 아들을 버리신 아버지이시지 아들의 피로 살아난 내가 아닌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아들을 버리시지 않으셨다면, 내게 은혜를 베푸셨을 때, 내가 그 은혜를 받을 자이든 거절할 자이든 상관 없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은혜를 받을 자이든 거절할 자이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 없이는 죽게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은혜를 받을 자임을 미리 아시고, 그대로 놓아두시면 죽게 될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고 나를 그대로 버려두셨다면, 비록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실 때 그 은혜를 받을 자였다 할지라도, 나는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되어 악독한 죄악을 범하다가 심판받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은혜를 주셔도 처음부터 거절할 자들보다 더 악랄한 죄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은혜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언제든 그 은혜를 거절할 수 있고, 거절하면 죽게 된다. 십자가의 아들을 영접하는 은혜를 받아 죄사함을 얻고, 말씀이신 아들을 따르는 은혜를 받아 구원이 이르게 된다. 은혜는 거저 주시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받을지 거절할지, 끝까지 간직할지 도중에 버릴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한 때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도중에 그 은혜를 거절하고 육체로 마치게 된다면, 그는 죽게 된다. 그는 청하심은 받았으나 택하심을 받은 자는 아닌 것이며, 하나님께서 끝까지 아들을 따를 것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자가 아닌 것이다.

  아들을 주신 것도 은혜요 아들 안에서 주시는 무엇이든 은혜다.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슨 충성과 헌신을 뿌려 그에 대한 대가를 얻게 하신다 해도, 그것 역시 그렇게 하기로 선택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를 붙드사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까지 강요하시지는 않으신다. 충성할 수 있는 은혜 역시, 충성하고자 하는 자에게 베푸신다. 은혜를 주셔도 충성하지 않을 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억지로 충성하게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 역시,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하나님께선 은혜를 받을 자가 누구인지 아신다. 하나님께선 은혜를 받을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을 찾는다. 은혜를 받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찾고 싶지도 않겠지만, 찾을 수도 없다.[1] 그 은혜를 거절할 자라면, 하나님을 찾도록 몇 번은 은혜를 주실 수 있겠으나, 그의 의지가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억지로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은혜를 거두시면, 그는 하나님을 찾고 싶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고자 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거절할 자에게서 은혜를 거두시는 것이다. 그는 심판을 받을 삶을 살게 되고,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2] 따라서 하나님께 어떤 충성과 헌신을 하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아 행한 충성과 헌신이므로, 비록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은혜를 받고자 했다지만, 그가 행한 충성과 헌신 역시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랑할 수 없다.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부르셔서 영화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육신을 이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육신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기에, 비록 환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 세상에서 죄인으로 정죄를 받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고난을 통과해서 양자되는 영광을 받아야만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 아래서는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을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아들의 형상인 양자로 만드셔서 영화롭게 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자들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셔서 고난을 받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므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자들임이 증명되고 있다면, 결국 우리는 죄와 상관 없는 자로 부활변화하여 영화롭게 될 것이므로, 비록 죽음의 위협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고난은, 우리가 아들의 고난에 동참하여 아들의 영광을 함께 상속받을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따라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아니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하여 미리 정하시고 양자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며, 우리가 양자되게 하시는 영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양자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지 않음으로 양자로 입양되지도 못할 것이며, 따라서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범죄하는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지 않으시리라.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피조물들도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는 영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며, 마지막 나팔 때에 몸이 구속되어 하나님께 양자로 입양되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입양될 때, 곧 하나님의 아들들로 나타날 때, 곧 아들의 형상을 닮은 자들로 나타날 때, 곧 부활변화체를 입게 될 때, 사탄은 심판받고, 사탄의 통치 아래 고통하는 피조물들에게는 안식이 이루어지게 된다. 죄를 이긴 자들에게만 사망 곧 죽음이 권세를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죄를 이긴 자들만 부활변화시키실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만 죄를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만 부활변화하여 양자로 입양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아직 부활변화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에게 양자되게 하시는 영께서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사 양자되게 하실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는 것은 아브라함이나 다니엘, 바울과 같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이다. 시험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기에 합당한 자로 증명된 자들만 부활변화시키셔서 1000년왕국 새예루살렘성에서 왕이신 맏아들 아래 왕노릇하게 하실 것이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고난과 죽음의 위협이 우리에게 닥칠지라도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게 되고 양자로 입양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고난조차도 우리에게는 선이 되는 것이다.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사탄을 심판하시고 피조계의 안식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양자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양자되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만 한다. 고난이 없다면 영광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고난 가운데 양자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일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을 것이다.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을 자들인 것을 미리 아신 것이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을 드러내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변화시키셔서 양자로 받으심이 합당함을 피조계에 증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창세로부터 예비하신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실 때 아들을 영접할 자들을 위해 이미 정하신 나라이다. 아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주시기를 미리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아들을 영접하고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지를 아신다. 그러나 특정한 이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미치셔서 강압적으로 아들을 영접하게 하시고 나라를 상속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아들을 영접할지 말지는 순전히 그 사람 본인의 선택이다. 누가 아들을 영접하고 끝까지 아들의 편에 서 있게 될지 우리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들어오는 자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정하셨다. 그리고 아들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아들 안에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버리사 사랑을 나타내 주신 것도 은혜요, 아들께서 죄의 저주를 대신 당하사 아버지께 버림받으시는 것도 은혜요, 아들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도 은혜요, 아들을 영접하는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도 은혜요, 죄를 용서하신 자들에게 성령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도 은혜다.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다. (1000년왕국에서도 특히 새예루살렘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전에 이미 이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누구인지 다 아셨다. 이 나라에 들어갈 자들을 임의로 택하셔서 이 나라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의인들로 만들어 내시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하실 것이었다면 자유의지를 주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이며, 피조물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작정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자들은 반드시 아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따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이다. 아들을 따를 수 있는 은혜를 거절할 자들이라면 은혜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나, 은혜를 받는다면 반드시 아들을 따를 자들이기에 아들을 따를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아들을 따르지 않을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억지로 아들을 따르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피조물들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공평하시지 않으시다고 고소할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들 따를 것을 미리 아신 자들에게만 아들을 따를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들을 따를 수 없다. 그리고 그 은혜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주신다.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아들을 영접하는 자들만 아들을 따를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아들을 따를 자들을 미리 아시고 은혜를 부어 주셨으므로, 아들을 따르는 은혜를 받은 자들은 반드시 영생으로 이끄신다. 이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끝까지 아들을 따를 것이기에 반드시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이들이 목숨을 버려 아들을 따를지라도,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아들을 따르게 된 것이므로, 아들을 믿는 믿음을 통해 부어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공로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죄사함을 받았으나 도중에 아들을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중단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중단하신 이유는 그가 은혜를 거절하고 헛되이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은혜를 거절한 이유는 그가 아들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가 도중에 아들을 배신하고 믿음의 길에서 돌아설 것을 아셨다. 그는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아들을 배신한 자 그 자신조차도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심판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드러내셨다.

 

I. 은혜로 구원하신다.

Ω 구원을 주시는 은혜[3]
1 심판에서 구원하신 자들만 영생하게 하신다.[4]
2 계명을 지키는 자만 심판을 피하게 하시고, 심판을 피하게 하신 자만 구원하신다.
3 하나님의 은혜로만 계명을 지킬 수 있다.[5]
4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자에게만[6], 곧 은혜받기를 원하는 자에게만 계속해서 은혜를 부어주신다.[7] 사랑으로 많은 기회를 주시지만[8], 끝까지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9]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시면서까지 은혜를 받으라 강제하시지는 않으신다.[10]
5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길 때에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을 수 있다.[11]
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긴다.[12]
7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13]
8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14]
9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15]

 

  아들께서 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아 버림받으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부어지나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아들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으나 누구나 다 아들을 믿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는 없다.[16] 따라서 누구도 공로를 내세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들을 믿었다고 해서 그 믿음을 공로로 주장할 수 없다. 아들께서 쏟으신 희생이 은혜이며, 믿음이나 불신은 그에 대한 선택인 것이다. 비록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가 성령하나님을 통해 율법을 지키게 될지라도, 그것은 그가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성령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므로, 그가 율법을 지키는 공로를 내세워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자랑할 수 없다.

  하나님께선 은혜를 받을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지만, 모든 사람을 받지 않으시고, 아들의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만을 받으신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밧줄을 던졌다. 밧줄을 잡고 잡지 않고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밧줄을 던지는 것은 은혜이다. 밧줄을 잡는 자는 살고 밧줄을 잡지 않는 자는 죽는다. 하나님께선 누가 밧줄을 잡을지 미리 아시고 밧줄을 잡을 사람에게 밧줄을 던지신다.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으되 사렙다 과부에게뿐이며, 이스라엘에 문둥이가 많았으되 나아만에게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밧줄을 던지시지 않으셨다면 누구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선 긍휼을 받을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받을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는 야곱이 아들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자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고, 에서를 미워하신 이유는 에서가 아들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미워할 자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선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셔서 아들을 본받게 하신다. 아들을 본받을 자들을 본받게 하시지, 아들을 거절할 자들을 본받게 하시지 않으신다. 본인이 노력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들을 영접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 있는 자들만을 긍휼히 여기신다.

i. 은혜

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된다.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은혜는 대가가 아니라 거저 주시는 것이다.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들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따라서 의롭게 여기심을 입은 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단지 믿었을 뿐이다.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법을 지켜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믿는 자를 값없이 의롭게 하셨다. 그러면 법을 어겨도 구원을 받는데는 별 상관이 없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믿는 자는 법을 어길 수 없다. 믿는 자에게는 법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은혜가 부어진다. 이 은혜는 곧 성령하나님이시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육신의 소욕 죄의 소원을 이길 수 있는 성령하나님의 소욕이 부어진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진리를 사모하게 되고 죄가 싫어지게 된다. 이 은혜를 계속 거절한다면 그는 진실로 아들을 믿는 자가 아니며 끝까지 아들을 따를 것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자가 아닌 것이다.

  믿음은 법을 지키는 행위로 나타난다. 믿음은 반드시 의의 열매를 낸다. 법을 어기는 것을 계속한다면 그는 아들의 희생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므로 그에게는 아들의 피가 적용되지 않는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을 가치 없게 여기는 자는,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믿는 자는 아닌 것이다. 혹 과거 언젠가는 믿었으나 지금은 죄를 사랑하여 법을 어긴다면, 다시 말해 과거 언젠가는 법을 지키는 것으로 그의 믿음이 증명되었으나 지금은 죄를 사랑하여 법을 어기며 심판조차 믿지 않는다면, 그는 아들을 따르게 하시는 은혜를 거절한 자고, 아들의 희생을 잊어버린 자이며, 아들의 피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는 자이다.[17]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아무 행위도 하지 못했음에도 믿어 의롭게 되기 때문에 죄사함이 은혜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자는 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게 된다. 행위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의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그가 진실로 믿는지 거짓으로 믿는지를 알 수 있다. 믿기 전에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믿은 후에는 성령하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율법을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하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로 지키는 것이므로 자랑할 수 없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수고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일 뿐이다. 내가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수고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살 것이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는 삶을 살 것이다. 은혜가 값없이 주시는 것이라 할지라도 은혜를 헛되이 받을 수도 있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은혜를 주셨더라도 은혜를 받지 않은 자와 같이 된다. 오히려 은혜를 주셨음에도 악을 행했음을 인하여 심판은 더 클 것이다.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율법을 모두 지키면 의롭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사람으로 오신 말씀뿐이시다. 말씀께서도 성령하나님 안에 계셨기 때문에 율법을 모두 지키실 수 있으셨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의롭게 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율법을 모두 지키기 위해선 성령하나님께서 오셔야 하는데 성령하나님께서 오시기 위해선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사함은 아들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율법을 모두 지키는 행위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아야만 율법을 모두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구원은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다.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바울조차도 죄인 중의 괴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신 은혜와 개인의 믿음에 따라 각자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신다고 믿는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얼만큼 사랑하는지를 정확하게 아시고 그의 행위의 무게를 재실 것으로 믿는다.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모두 지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아들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거절했으므로 심판에 들어간다.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게 되기 때문에, 믿음으로 죄사함받은 자 곧 은혜받은 자만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성령하나님을 통한 의이다. 행위로는 율법을 지키는 흉내밖에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진실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야 한다.

  율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사나 절기 등의 아들을 예표하는 법들은 아들께서 오심으로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을 믿는 자는 아들 안에서 제사나 절기 등의 법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행위를 요구하는 법들은 성령하나님 안에서 행위로 지켜 내야 한다. 행위로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며 은혜로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할 수 없는 내게 값없는 희생의 은혜를 베푸사 할 수 있게 하셨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면 베풀어주신 은혜는 헛것이 된다. 믿으면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믿음은 거짓이었음이 탄로나게 되는 것이다.

  혹시 예전에는 실제로 믿어 죄사함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믿음을 저버린다면 역시 믿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18] 심판에 들어간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범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대신하여 의인이 죽음을 당했다. 이것이 은혜이다. 모든 죄인은 누구나 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거절하길 원하는 자는 거절할 수도 있다. 구원받는 자들은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는 것이고, 심판받는 자들은 은혜를 거절하여 심판받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을 영접하여 은혜를 받기로 선택하는 믿음이 행위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행위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모든 은혜는 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것도 은혜다. 하나님을 공경하려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여시면서까지 그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선 은혜를 거절하지 않을 자들에게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신다. 은혜가 중단된다면 그 이유는 그가 은혜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프뉴마)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 눈을 밝히시는 것도 은혜다. 아들을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기 원하게 하시고, 아들을 영접할 자들에게 아들을 영접하게 하신다. 아들을 영접할 것을 미리 아셨으므로 아들을 영접하게 하신 것이다. 아들을 영접할 자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그대로 버려 두셨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나 아들을 영접할 자를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사 그로 아들을 영접하게 하신 것이다. 아들을 영접하는 것 역시 은혜이나 그 은혜는 아들을 영접하기로 선택하는 자들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각자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은 각자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신 것이다.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성령하나님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시다.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전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다.

고후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진리는 주 예수님 안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아들 안에서만 진리를 깨닫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믿는 자들만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받을 수 있다. 아들 안에서만 빛을 받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고후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믿음으로 아들의 얼굴을 보는 자들만 아버지의 영광을 알 수 있다. 아들 안에서만 아버지의 영광을 아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ii. 믿음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은 사탄의 압제 아래 있는 이 세상에서, 아들의 통치를 인정하며 사탄의 미혹을 거부하는 힘이다. 믿음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이겨내게 하는 힘이며,[19]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드릴 수 있게 하는 사랑이고,[20] 세상이 주는 쾌락과 안락을 버릴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다.[21] 믿음은 육신의 동족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동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단호함이고,[22] 보이지 않는 더 좋은 것을 위해 보이는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지혜이다.[23] 믿음은 말씀을 인정하는 자들의 마음상태이며, 반드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원인이다.

11:36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믿음이 있는 자들은 믿음의 기초가 되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강한 자를 이길 수 있게 되고,[24]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된다.[25]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값없이 은혜로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신다. 그러나 은혜를 받을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은혜를 거절할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다. 혹 베푸시더라도 이미 믿음의 은혜를 거절했으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은혜로 믿게 하신다. 믿음은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믿을 자에게 믿게 하신다. 믿을 자라도 믿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면 믿지 못하고 죽는다.

 

II.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공의롭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아신다. 피조계를 있게 하시기 전에 이미 피조물들의 자유의지를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시고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기를 작정하셨다. 그리고 어떤 피조물들이 아들을 영접하며 어떤 피조물들이 아들을 거절할 것인지를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영접할 피조물들을 구원하시고 아들을 거절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심판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피조물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왜 그를 구원하시고 왜 그를 심판하시는지를 모른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피조물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신 분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게다가 사탄과 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공평하지 않으신 분이시라고 주장하는 놈도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한다면 하나님을 오해한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피조물들의 자유의지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의 자유의지를 완성하시기 위해선,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선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셔야 한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왜 어떤 피조물들은 구원하시고 어떤 피조물들은 심판하시는지 그 이유를 피조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온 피조계에 드러내 보여 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공의롭지 못하신 것이 아니며, 누군가를 심판하시더라도 피조물들을 사랑하셔서 그러시는 것임을 피조물들로 알게 하셔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권위를 내세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무작정 믿도록 명령하시고, 갑자기 피조물들이 보기에 합당한 이유 없이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고, 누군가를 그 심판에서 빼내 주시는데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신다면, 피조물들이 그것을 일종의 강압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사랑을 요구하실 수 없으시다. 피조물들에게 자발적인 사랑을 원하신다면 반드시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셔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셔야 한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사랑과 공의를 이해할 수 있게 하셔야 한다. 그래야만 피조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만약 그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으신다면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하나님께로 부르셔서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려는 작정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심지어는 형벌에서 빼내 주신 피조물들조차도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언제 또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형벌하실지를 알 수 없고 그때도 그 형벌에서 자신을 빼내 주실 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판의 기준이 되는 계명을 주시고 계명을 어긴 이유 때문에 피조물들을 심판하셔야 한다 해도, 그 계명을 그 피조물에게 명령하시는 것이 합당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셔야 한다.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셔서도 안 되며 그 피조물이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존재여서도 안 된다. 지킬 수 있는 계명을, 그 계명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피조물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상태에서, 완전한 개인의 선택으로 어겼을 때에만 비로소 그 피조물에 대한 심판은 공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명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탄을 즉시 심판하시지 않으신 이유이다.

  타락하여 죄의 종이 된 아담은 스스로의 힘으로 계명을 지킬 수 없다. 그러면 아담에게 계명을 주시고 계명을 어겼다고 심판하시는 것은 불의한가. 만약 아담에게 아들의 약속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들의 십자가를 약속하셨고 아담으로 하여금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면 계명을 지켜야만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인가. 믿는 자만 계명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 아들을 믿지 않으면 심판받는다. 그리고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아들의 사랑의 통치에 복종하며 복종해간다.

  아들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러나 완전한 빛께서 오시지 않으셨기에, 하나님께서도 율법의 본래 의도를 완전하게 드러내시지 않으셨다. 아들께서 오신 후 비로소 마음에 품은 것까지 죄임을 드러내셨다. 아들의 피로 죄사함이 이루어진 자에게 성령하나님께서 오신 후에야 비로소 지킬 수 있는 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아들께서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도 아들께서 오신 후와는 달랐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양심의 법을 주셔서 아들의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셨을 것이나 양심의 법을 전부 지킬 수 있다고도, 또 전부 지켰다 하더라도 바로 죄를 용서받는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아마도 아들의 이름 앞에 서서 받게 될 다른 형태의 시험 앞에 서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1000년왕국에서 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잘 모르겠다.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공평공정하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에게 상황을 고려한 충분한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고 각자가 확실하게 선택한 결과를 각자가 받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 할 것이기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를 가까이 하신다. 여러 다른 환경에서 시작한 모든 피조물들은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의 공평한 기준에 따라 각각의 환경에 맞는 기준으로 심판받을 것이며,(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다.) 백보좌 대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시다 주장할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즉시 심판하셨다면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과연 지킬 수 있는 것인지, 사탄이 정말 잘못한 것인지,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피조물들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이유를 납득하게 하셔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통해, 아들 안에서 피조물들을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선택할 피조물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사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아들을 거절할 피조물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사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선 누가 끝까지 신실할 것인지, 누가 중간에 배신할 것인지를 다 아시고 피조물들의 삶을 드러내셔서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함을 피조계에 공개해서 드러내신다.

  따라서 피조물들은 알게 된다. 왜 그 피조물을 심판하셔야 했는지. 왜 그 피조물을 구원하셨는지. 왜 사탄을 심판하시는 것이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는 것이며, 계명을 왜 지켜야 하는지. 계명을 어기는 죄악이 피조계에 어떤 참혹함을 일으키며, 그 참혹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드러나는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 사랑을 알게 하신 피조물들로 어디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지. 이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한 의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어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며, 죄악을 선택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셨으므로 피조계에는 죄악이 영원히 없게 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아들께 복종하므로 아들 안에서 피조계의 창조는 완성될 것이며 아들께서는 아버지께 복종하실 것이다.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프로티데미아:앞에놓다) 것이니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피조계의 모든 피조물들이 아들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셨다.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프로오리조:미리결정하다)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선택할 자들을 미리 아시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결정하셨으며,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미리 정하신 자들을 통해 영광받으시기로 작정하셨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아들 안으로 들어오면 구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아들 밖으로 벗어나면, 피조계에 대한 창조를 완성하사 피조물들을 아들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예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밖으로 벗어나는 피조물들을 남기시지 않으시고 불못에 던지실 것이다. 누가 그러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따를 자들을 이미 아셨고, 피조계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아신대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이미 정하셨고, 지금 그대로 이루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피조계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작정하신 뜻을 지금 그대로 이루시고 계시므로, 창조 전 처음부터 이미 이런 과정으로 피조계를 완성해 가시기로 계획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피조계에 그대로 드러내시는 것을 피조물들은 이제 보고 있다.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프로케륏소:미리알리다)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인간 선지자로(초림), 또한 왕이신 하나님으로(재림) 보내시기로 예정하시고 천사들의 하늘을 창조하셨다. 타락한 천사들을 하데스에 가두신 후, 인간을 만드셨다. 타락한 아담에게 아들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시고 아들께서 오셨다.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시고,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하나님께서 오셨다. 이 모든 일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다. 영원 전에 이미 구원하실 자들과 심판하실 자들을 다 아시고 창조를 시작하셨다.[26]

  유쾌하게 되는 날 곧 새롭게 되는 때는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임하사 내 마음에 새언약을 새기시는 때이다.[27] 이것은 최종적으로 새하늘과 새땅인 1000년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지만, 성령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성령하나님께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랑으로 내게 임하시기 때문이다.[28]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율법의 완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프로오리조:미리결정하다)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허락하실 것도 예정하셨다. 하나님을 대적할 자들을 미리 아시고 그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사용하시기로 예정하셨다.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프로데시스:제안) 뜻대로 하신 것이라

  예정하신 자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교회를 통해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시기로 계획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셨다. 아들을 위하여 아들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되게 하시고자 하는 작정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신 것이다. 영원부터 먼저 작정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신 것이다. 피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작정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완성될 것이다.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11: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능력:뒤나미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보여주신 능력을 소돔에서 보여주셨다면 소돔 사람들이 회개했을 텐데,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므로 회개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하나님께서 회개할 사람들을 버리셨다는 뜻인가. 똑같이 회개할 사람들 중 누구는 구원하시고 누구는 버리셨다는 뜻인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 아니시라는 뜻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보이셔서 소돔 사람들을 회개시키시지 않으셨던 이유는 소돔 사람들이 회개하려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능력이 두려워 잠시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곧 다시 멸망의 길로 돌아갔을 것이다.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사람에게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이었으며,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시를 받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아니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29]

  비록 소돔 사람들이 능력의 이적을 보고 두려움 때문에 잠시는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이들은 다시 범죄할 자들이었을 것이다. 소돔 사람들은 큰 죄인들이었으며[30] 도시를 통틀어 10명의 의인도 없었고[31], 천사들의 능력으로 눈이 어두워지는 이적을 겪었음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었다.[32] 아들께서 가버나움에서 보이셨던 능력과 같은 능력을 보이셨다면 소돔 사람들이 회개했을 것이지만 분명 다시 멸망을 선택할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셨을 것이라 믿는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버나움 사람들에게는 왜 능력을 보이신 것인가.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교훈을 위해 회개하지 않는 사례를 남기셨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능력을 보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고 능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어차피 결국에는 아들의 통치에 복종하지 않을 자들이며 멸망을 선택할 자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III. 하나님께선 거절하실 자를 거절하신다.

  그가 듣지 않으려 하므로 들을 수 있는 은혜를 거두시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멸망시키시기 위하여 그를 창조하시고 그를 멸망시키시기 위하여 듣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가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아들을 거절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를 버리신 것이지, 그가 아들을 영접할 자임에도 그에게서 은혜를 거두셔서 아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왜 미리 정하시지 않으셨는지는, 이들의 삶에서 이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거절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6: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듣지 않을 자들에게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신다. 진리를 들으면 심판에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죄를 사랑하여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에게는 진리를 감추신다.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3: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죄인들이 구원의 진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죄에 대한 사랑으로 둔해졌기 때문이다. 죄를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비유가 된다. 허락된 자들, 곧 구원하실 자들에게만 진리를 듣고 구원을 받게 하신다.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12: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12: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들이 아들을 영접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완고한 채로 버려두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버려두신 이유는 이들이 아들의 통치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죄를 사랑하는 이들로 아들을 영접하고 심판에서 구원을 얻게 하실 수는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아들을 영접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기에 이들이 아들을 영접할 수 없는 것이다.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아들을 영접할 자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아들을 영접하지 않기로 선택했으므로 이들의 마음을 버려두신 것이다. 이들이 아들을 영접하고자 했다면, 이들에게 아들을 영접하게 하셨을 것이고, 이들이 아들을 영접했다면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죄를 사랑하여 아들을 영접할 수 있는 은혜를 거절했으므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 것이다.

29: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29: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29:11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29:12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29: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하나님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이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를 선택했으므로 이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 억지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신다면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절한 자들에게는 강제로 은혜를 베푸셔서 진리를 깨닫고 심판을 피하게 하시지 않으신다.

11: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몇몇만을 구원하시고 다수의 사람들은 완악한 상태로 버려두사 혼미한 심령과 보고 듣지 못하는 눈과 귀를 열지 않으신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받아들인 몇몇만을 택하시고 하나님을 거절한 나머지는 버리셨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은 받았으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부르심은 예정 안에 있는 부르심이 아니다. 교회에 알곡과 가라지를 같이 부르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뿌리신 씨앗과 마귀가 덧뿌린 씨앗이 같이 있는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는 이미 끝까지 아들을 따를 자이다.)

렘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신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이다.

겔3:5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겔3:6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겔3: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을 자에게 듣지 못하게 하신다.

요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한 자는 마귀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말씀이신 아들을 영접할 수도 없다. 이들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의 의지를 인정하사 이들을 버리신 것이다.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자들을 버려두사 사탄구라떼의 미혹에 속게 하시고, 사탄구라떼와 같이 심판받게 하신다.

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죄에 속아 마음이 완고해지고, 아들을 거절하게 된다.

시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시81:12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팍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는 자들의 마음을 버려두사 자기 뜻대로 행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에 말씀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거절하고 죄악을 사랑하는 자들을 버리신다. 죄악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를 받게 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은혜를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죄악을 사랑하여 은혜를 거절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이들을 정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14:9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14: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14:11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거짓 선지자가 미혹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미혹되게 버려두셨기 때문이고, 그를 버리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다.

 

IV. 하나님께선 미리 아신 자를 정하신다.

  만약 예정하신다는 뜻이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가 타락하고 버려져 심판받는다면, 하나님의 예정이 틀린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정하신 뜻이 틀리게 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는 피조물 본인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도 않으신다. 그러므로 미리 정하셨다는 뜻은, 미리 정하시는 것이 합당한 미리 아신 자들에 한해서이다.[33] 그 미리 아신 자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들 안으로 들어온 자들이다. 아들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살고, 아들을 벗어나는 자들은 죽는다. 그리고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최후에 누가 살 것이며 누가 죽을 것인지를 아신다. 아들을 심판의 기준으로 세우시고 아들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결과를 모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가 아들 안으로 들어옴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셨음을 알 수 있고, 그가 아들 밖으로 벗어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시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결과를 이미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정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었다. 예정하신 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예정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에, 부르심받은 누군가가 도중에 멸망한다면,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구원받았다가 버림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는 결코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34] 그가 만약 하나님을 거절할 자였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미리 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세상에서 나온 자들이 광야교회에서 무너져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죄사함을 받았을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은, 예정하신 자들이 아니라 믿는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프로기노스코:미리알다)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프로오리조:미리결정하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선 누가 아들을 선택할 자들인지를 미리 아시고 아들을 선택할 그들을 미리 결정하셔서 양자로 삼으시기로 작정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뜻은 그가 반드시 자신의 의지로 아들을 선택할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선택할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라면 누구나 다 예정하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어떤 피조물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예정하신 이유는 그가 끝까지 아들을 선택할 자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사함 받았다고 해서 끝까지 아들 안에 있지 않는다. 핍박이나 유혹의 시험에 져서 도중에 아들을 떠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있으며,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진실된 자들과,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거짓된 자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좋은 고기인지 나쁜 고기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말씀을 믿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물론 죄사함은 은혜이며, 계명을 지키는 것도 내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하나님을 통한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성령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지만, 내가 죄를 선택하는 것을 강제로 막으실 정도로 내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는 않으신다. 나는 얼마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할 자들을 미리 아신 후에 비로소 그들을 선택하셨다. 미리 정하신 후에 그를 하나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거역할 피조물을 억지로 하나님을 선택할 피조물로 만드신다면 그것은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셨다 하시고, 그래서 피조물 개개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예정하신 그를 강압하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이루신다면, 그래서 그의 의지로 선택한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강압으로 억지로 하기 싫은 선택을 한 것이라면, 그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자유의지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권한으로 예정하신 자를, 반드시 하나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로 이끄셔서 하나님의 예정대로 존재하게 하시는 일은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모든 예정은 피조물 각자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시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71: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임신이 되었을 때부터 붙드셨다는 뜻인가. 아니다. 임신이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선 임신이 될 것을 이미 아셨다. 임신이 되기 전, 그 부모도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선, 그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기 위해 필요한 피조물임을 아시고 그를 통해 이루실 일들을, 피조계의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그 피조물의 자유로운 선택을 고려하시고 계획하셨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원을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하나님의 시간은 실제로는 인간의 시간과 많이 다를 것이다.)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어쩌면 천사하늘의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어쨌든 하나님께선 전부 다 아신다.) 이미 하나님께서 피조계에 두신 책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떻게 죽게 될지를 전부 기록하게 하셨다는 뜻이라면,(비록 누구에게 언제 그것을 볼 수 있게 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탄구라떼에게는 볼 수 없게 하시지 않으셨을까. 사탄은 미래를 알 수 없다. 주신 지혜로 비교적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사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미래를 알 수 있었더라면 타락한 후의 자신이 불못에 반드시 던져질 것을 확실히 알았을 테니 겁나서 타락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반드시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므로 계명을 지키려는 의지를 처음부터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아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유의지와 함께 스스로 미래를 아는 예지능력을 피조물들에게 주시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어떤 피조물이 미래를 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말씀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70이레의 예언을 전달한 가브리엘은 70이레의 결말을 믿을 것이고, 사탄은 믿지 않으므로 70이레예언대로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아담에게처럼 헬렐에게도 계명을 어기는 결과를 미리 말씀해 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헬렐은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알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결과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헬렐은 아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결과를 믿지 않았다. 범죄하면 반드시 죽는다. 미래를 알지 못하게 하실지라도, 선택에 대한 결과를 미리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는 자는 범죄하지 않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범죄할 것이다. 따라서 말씀을 믿는 자들만 범죄하지 않을 것이므로 믿는 자들만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의 선택과 삶을 책에 기록하신 것은, 천사들에게 그것을 볼 수 있게 허락하신다면,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증명하는 좋은 교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천사들로 기록하게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그대로 단 한 번의 틀림도 없이 실제로 살아가며, 기록하게 하신 그대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천사들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판단 역시 정확함을 알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실수 없이 피조계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하며, 각 피조물들에게 내리시는 구원이나 심판의 선고에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천사들을 만드시기 전에 천사들이 내릴 선택도, 책이나 영상처럼 천사들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미리 기록해 놓으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영역이니 넘어간다. 혹시 그렇게 천사하늘에 되어질 일을 미리 기록해 놓으신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헬렐의 미혹을 지나기 전에는 알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데스 안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해 놓으셨고 그것을 천사들로 읽을 수 있게 공개하셨다면,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천사들 역시 세상 끝날까지의 일을 이미 하데스를 만드시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아들께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실 사랑도 당연하겠지만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에게 70이레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러 온 가브리엘[35]이 이미 세상 끝까지의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을 보면[36]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책에 기록된 것을 읽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다니엘에게 전하라고 가브리엘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주신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회를 통해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이 하나님께 속한 천사들이라면, 책을 보고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에 담긴 지혜를 알았을 텐데, 굳이 역사 안에서 교회를 통해 다시 알리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대로 될 것이는 것을 증명하시려는 의도라면 몰라도. 물론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이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이 아닌, 사탄구라떼라면 책을 볼 수 없었을 테고, 당연히 교회를 통해 나타내실 지혜를 알지도 못했을 테니 사탄구라떼에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면 조금 납득이 가나,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특정한 천사들에게만 그 책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주님의 책이 반드시 책을 의미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책과 같이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천사들이 하데스의 성도들을 보고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각 사람의, 혹 특정한 사람의 일생이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천사들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기록을 천사들의 전부나 일부가 볼 수 있게 하셨다면,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명하는 사람들의 삶도 주의 책에 모두 기록이 되었고 그것을 본 천사들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사도들의 삶을 이미 알고 있는 천사들은 사도들의 삶을 보며, 하나님의 계명이 확실하며,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심을 재차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왕상13: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요시야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요시야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알고 계신다. 그것을 천사들에게도 알려 주셨을 것이다. 언제 어떤 천사들에게 누구의 생애를 알려주시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특정한 천사나 인간들에게 특정한 인생들의 장래일을 알리신다는 것은 알 수 있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가 죽은지 한참 후에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고레스라는 왕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다가 바베론으로 포로되어 잡혀가기도 전에, 고레스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기간이 끝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다.

9: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인간들의 미래 역사에 대해서 가브리엘만 알고 있는지, 아니면 모든 천사들에게 장래 인간들의 행적이 기록된 책을 공개하셨는지는 모르겠고 언제 공개하시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필요로 하시는 천사나 사람에게는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1: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을 통해 아들께서 이루실 일들을 말씀해 주신다. 다니엘에게도 가브리엘이 세상 끝까지의 인간 역사를 전달한 것을 보면 분명 오래 전부터 인간의 역사를 알고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에게만 알려주셔서 전달하게 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데스가 불못에 던져져 끝날 때까지의 인간 역사를 모두 책에 기록해 놓으시고, 모든 천사들에게 공개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경우든, 구원받을 자들이라고 해서 구원받기에 유리한 기회를 주시고, 불못에 던져질 자들이라고 해서 구원받기에 불리한 기회를 주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각자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에 어떠한 간섭도 없이 피조물들은 각자의 의지만으로 선택할 것이다.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태어날 때부터 부르셨다 말씀하신다. 물론 나는 태어나기 훠얼~씬 전부터 예정하셨다고 믿는다.

49: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 말씀은 종으로 오실 아들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예정은 천사들을 만드시기 이전부터 정하신 것이다.[37]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피조계의 창조를 완성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천사하늘과 그 이후의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38] 당연한 이야기지만, 창조주께서 언제 무엇을 작정하셨든, 피조물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자신이 피조된 이후의 일이니, 창조주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작정을 천사들에게 알게 하신 이후에야 천사들은 창조주의 작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부터,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다. 미리 아셨기 때문에 미리 정하신 것이지,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을 아시고 예정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인도하시는 것과, 예정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시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유의지도 역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 안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은혜가 없으면 아들의 피도 없었을 텐데,[39] 어떤 피조물이든 살 수나 있었겠는가.

1: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침례요한의 출생 전부터 침례요한의 삶을 아셨다.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은혜는 곧 십자가의 사랑이다. 그 은혜가 십자가의 사랑을 거절할 나를 억지로 강요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은혜로 주셨을 때 각 피조물은 그 사랑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한다.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하나님께선 그 선택에 관여하시지 않으시고 그 선택을 존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피조물들에게 끝까지 그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시지만, 그 은혜 역시 거절하거나 헛되이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도중에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많은 은혜들을 주시지만, 은혜로 나를 강요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거절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게 하시지는 않으신다. 모든 것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의 선택이고, 그 가슴아픈 사랑을 거절하는 것도 나의 선택인 것이다. 은혜는 자유의지가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도울 수는 있으나, 피조물의 자유로운 선택을 침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는 뜻은 거절할 나를 억지로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뜻이며, 내가 거절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쏟아주신 그 은혜가 헛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십자가의 은혜를 거절할 자였다면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택정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택정하셨다는 뜻은 나를 만드시기 전에 이미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아셨고, 하나님을 선택할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택하신 후에 나를 만드셨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은혜를 베푸사 십자가에서 사랑을 쏟아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나의 선택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실 뜻을 인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시기로 정하신 것이다. 만약 내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사, 하나님께서 이루실 뜻에서 나를 제외시키시고 나를 택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피조계에 아들을 거절한 나를 심판하시는 것이 정당함을 드러내시기 위해, 아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공정하게 주셨을 것이다.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9: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야곱을 만드셨으며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에서를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하실 의인들을 대표하시고 심판하실 악인들을 대표하시기 위해 야곱과 에서를 표본으로 만드셔서 야곱은 그 개인의 선택과는 상관 없이 구원하시고 에서는 그 개인의 선택과는 상관 없이 심판하신다면, 그것은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을 선택할 자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고, 에서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에서가 하나님을 거절할 자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미리 아신 그들을 표본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은 심판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실제로 태어난 후의 이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예정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따라서 피조물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공정하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아들을 거역할 자들을 미워하신다. 그러나 아들을 받아들일 자들 역시 자신의 공로나 행위나 노력으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들을 향한 은혜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뿐이다.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시며, 강퍅하기를 선택하는 자를 강퍅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로가 하나님을 거절할 것을 미리 아셨으므로 바로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기로 계획하신 것이다. 바로가 하나님을 선택할 자였다면 다른 환경에서 바로를 태어나게 하시고 바로의 자리에 하나님을 거역할 다른 사람을 태어나게 하셨을 것이다.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하나님께서 각 피조물의 선택에 따라 그를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는 긍휼을 베푸시고 누구에게는 심판을 베푸시는데, 그러면 하나님 맘대로 피조물들을 조종하시므로, 강퍅하도록 조종하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왜 제가 하나님을 거절할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셔서 하나님을 거역할 자로 나를 사용하십니까’, ‘저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 아니십니까’, ‘하나님께서 잘못하셨으니 제게 그 죄를 물으시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라는 항의 역시 잘못된 것이다.

9: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이것은 왜 누구는 죄를 범할 자로 만드셨고, 누구는 계명을 지킬 자로 만드셨는가를 하나님께 여쭙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왜 저를 하나님을 거절할 자로 만드셔서 심판하십니까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왜 어떤 자는 죄를 범하도록 허락하시고 어떤 자는 계명을 지키도록 허락하시느냐를 여쭙는 것이며 곧 왜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가를 묻는 것이다. ‘왜 내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을 거절할 수 있게 하시고 거역하면 심판받도록 허락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왜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지는 피조물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피조물들을 완전하게 하셔서, 당신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기 위해서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라고 추측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피조물들은 창조주께서 작정하신 창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들을 귀히 쓸 그릇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을 거역할 것을 미리 아신 자들을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드신 것에 대해서는 피조물이 말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9:23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피조물들에 대해 오래참으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을 선택하는 피조물들에 대해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부으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하나님을 거절하면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 ‘어떤 피조물들은 이 사실을 알 기회가 없었지 않느냐라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영접하는 것에 따라 너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라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양심과 마음이 하나님께 대하여 닫혀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40]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혹 이러한 피조물들에게는 다른 방법으로 공정하게 기회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 자유의지를 주신 각 피조물들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피조물이든 아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알게 하실 것이다.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말씀하셨다. 이것은 끝까지 죄사함 안에 머물러 있어 믿음의 결국인 혼의 구원을 받으라는 뜻이다. 끝까지 부르심 안에 머물러 택하심을 받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굳게 하지 않으면 실족하여 영원한 왕국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예정에 대해 설명하신 로마서8장의 미리 아시고 정하셨다는 단어는 미리 알다는 뜻의 프로기노스코미리 결정하다는 뜻의 프로오리조이다. 여기서 부르심과 택하심에 쓰신 단어는 초대라는 뜻의 클레시스선택이라는 뜻의 에클로게이다. 마태복음22장의 청함택함과 같은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얻도록 초대하시고, ‘초대된 자들 중 의로운 행실인 예복을 입은 자들을 선택하신다. ‘초대는 죄사함이고 선택은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초대하시고 선택하실 자들을 미리 아셨, 끝까지 초대안에 남아 있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자들을 예정하셨다. 따라서 예정하신 자들은 도중에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며, 실족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초대안에 남아있음으로 반드시 선택받는다. 만약 내가 도중에 하나님을 버릴 자라면, 나는 초대받았을지라도 버림받았으므로 선택받은 자는 아니며, ‘예정하신 자가 아닌 것이다. ‘예정하신 자는 주 예수님의 양이다. 모든 것을 전부 다 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먼저 아시고 미리 정하신 자에게 그대로 초대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예지예정) 그러나 제한된 시각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가 끝까지 하나님의 초대안에 남아있음으로 비로소 그가 선택받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신 것을 알 수 있다.

22:14 청함(클레토스)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에클렉토스)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여기서 택함을 입은 자들은 예복을 입었으므로 끝까지 하나님 안에 있어 부활변화의 몸을 입을 구원받을 자들이다. ‘초대를 받은 자들은 죄사함을 받으며, 죄사함 안에 끝까지 머물러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 ‘예정하신 자는 예복을 입어 초대받은 잔치에서 쫓겨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으므로 반드시 선택받는다. 이렇게 반드시 선택받을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에클레고마이:선택하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프로오리조:미리결정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들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양자들이 되게 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아들 안에 있는 자만을 선택하신다 하셨으므로 내가 아들 안에 있음을 통해 아버지의 선택 안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들 안에있다면 나는 반드시 아들을 머리로 모시는 아들의 몸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택하신 우리를 예정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편지의 수신자로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곧 교회이다.[41] 이 예정에 관한 말씀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개인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제한된 것밖에 알 수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누가 끝까지 하나님 안에 머무를 자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셨을지, 또한 누가 도중에 하나님을 떠날 것이므로 그가 단지 초대만 받고 끝나게 될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정하셨다는 말씀은 1차적으로 아들 안에 있는 무리들교회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전부를 향해 하신 말씀으로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교회의 일원이라면 나는 아들 안에있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나를 예정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내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지 않는 자일 테니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교회안에 있으므로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에 속했다는 뜻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이다. 교회 안의 염소들[42] 곧 가라지들[43]은 계속 그대로 죄 아래 머물러 있는다면 결국에는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불못에 던져질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가 아니라고 전제할 때, 교회에 출석한다고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며 따라서 교회의 일원이 아니다.

  물론 교회우리를 예정하셨다는 뜻과 함께 우리의 일원인 를 예정하셨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인 동시에 교회의 일원를 향해 하신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는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으로, 2차적으로는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다.[44]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의 결국은 생명과 복이라는 사실은 말씀을 믿음으로써 알 수가 있지만[45], 내가 무슨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항상 깨어 하나님께 나아갈 뿐이다.[46] 아들 안에 있는 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므로[47] 믿음으로 아들 안에 있기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할 지를 알 수조차 없는 피조물이 그 선택의 결과인 운명까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피조물이 자신의 결국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게 된다. 자유의지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선택할지 아니면 욕심으로 하나님을 거역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국을 안다면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이 무슨 선택을 하든 그 피조물 스스로의 선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셨는지 아닌지를 지금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으므로, 내가 아들 안에 있음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예정에 대해 함부로 오해하여 죄를 가볍게 여겨 멸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여기서의 버림아도키모스라는 단어로 ‘rejected거절된이라는 뜻이다. ‘아도키모스도키모스의 부정형인데 도키모스‘acceptable받을만한의 뜻이다. 또한 이 아도키모스는 롬1:28[48]에서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에서 상실한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무시하고 내가 일부러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절하므로,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49] 결국 나를 거절하실 수밖에 없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거절당해 상실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뜻이고, 상실한 마음에 버려진 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누가 생명책에 기록될 자인지, 누가 기록되었다가 지워질 자인지, 누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할 자인지를 이미 천사들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알고 계셨다. 이미 아신 생명책에 끝까지 기록되어 있을 자들을 예정하신 것이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는 아니다. 심지어는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들 중에서도 예정하시지 않은 자가 있다는 뜻이다.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기록되었을지라도 지워질 자는 하나님의 양이 아니며 예정하신 자가 아니다. 심지어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더라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자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주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50]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뜻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인지 어떤 것에 기록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록될 수 있고 또 지워질 수 있다.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아버지께서 나를 청하시고 아들의 피로 죄를 용서하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은,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나를 사랑하셨고, 나의 영적인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사[51], 이 땅에 안식을 이루시기 위하여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7: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7:11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7: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끝까지 아들 안에 머물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나는 살게 될 것이고, 아들 밖으로 벗어나 성령하나님을 거역하고 계명을 어긴다면 나는 죽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뜻은, 나를 예정하셨으므로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어떤 죄를 범해도 나를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성령하나님을 의지하여 의롭게 산다면,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으시고 나를 구원하시겠다라는 뜻이다. 슬프게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었다.[52]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실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베푸셨다면, 그들은 나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했을 것인가.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께 나보다 더 충성할 자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자들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은혜 베푸실 자에게만 은혜를 베푸신다.[53] 그러나 아무리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을 자라 해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다면[54], 그는 반드시 죽는다.[55]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이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 있음을 아는 자들은, 다른 이들이 반드시 멸망할 자들일지라도, 그들보다 자신을 위에 세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나도 똑같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심판 가운데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사랑으로 경배드리며 충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지금 내가 살아 있게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자들은, 곧 죽는다.

9: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9: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내가 의롭거나 정직해서가 아니다. 의인은 없다.[56] 만약 내게 의의 열매가 맺혀진다면 그것은 내가 맺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인하여 내가 의로운 행실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57]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신 이유는, 내가 의롭거나 정직해서가 아니라, 사탄을 심판하시는데 나를 사용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곧 후손으로 아들을 보내셔서 사탄을 심판하시고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인 나를 사용하시기로 정하신 것이다.[58]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해 사탄을 심판하실 길을 예비하시고, 왕으로 다시 오사 사탄구라떼를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아담이신 아들께서는 1째아담이 사탄에게 빼앗긴 (다른 주장으로, 죄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으셔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실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해 사탄구라떼를 몰아내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은혜를 베푸시면 내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선택을 할 것을 미리 아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선택을 하게 하셨다. 내가 믿음의 선택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내 의로움이나 정직함 때문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면, 비록 내가 은혜를 거절하지 않을 자라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나의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59] 나는 목이 곧은 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주제를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죽을 내게 살 기회를 주셔서 나는 살았다. 많은 이들이 그 기회를 거절했고 죽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서 살 수 있도록 주시는 기회를 거절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공로로 삼아 자랑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60] 만약 죽을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보다, 살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은 나에게 집중한다면 배은망덕한 자이고, 곧 죽게 될 것이다.

 

V. 대부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예정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미리 아시고 나를 예정하셨다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든 구원을 받는다는 뜻인가. 아니다. 내가 최종적으로 믿음의 결국인 구원을 받을지 아니면 심판에 들어갈지 하나님께선 아시겠지만 나는 모른다. 또한 시험을 통과하기 전에는[61] 알게 하시지도 않으실 것이다. 알게 하신다 해도 다니엘[62]이나 말년의 바울[63]과 같이 시험을 통과한 후에 이기는 자가 되어, 죽을지언정 절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질 수 없는 자가 되었을 때에나 알게 하실 것이다.

  물론 내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증하시므로, 성령하나님의 보증을 통해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64] 내가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들을 배신하면 예정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지예정하신 것을 나는 알 수 없다.[65] 다만 내가 아들 안에 있음을 통해, 아들 안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66]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의[67] 예정은 아들 안에 있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있어 예정은 예지가운데서 결정하신 것이기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다.[68] 그러나 그 결정된 결과를 우리는 알 수 없다.[69]

  만약 내가 결국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더라도, 하나님께선 내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들을 주실 것이며,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반대로 내가 결국에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더라도, 나는 피조물들 앞에 내가 진실로 회개했으며 공정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 합당함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최후의 승리를 얻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셨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지하신 것을 안다면,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만약 하나님께서 예지하신 것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심판받을 자는 자신이 무슨 노력을 해도 결국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기회들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결과가 결정된 상태에서 선택한다면 믿음이 아니다. 자신이 결국에는 반드시 죽을 것을 확실히 아는 자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다. (아마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을 알아서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핑계를 댈 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결국에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을 아는 자라면, 아들의 길을 따라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사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확정되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시험을 이기기 전에 알았다면, 죄사함받은 자가 피조계에 자신의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시험들을 과연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미래를 알고도 아들을 따를 자들을 예정하셨겠지만.) 아들의 길을 따라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목숨과 그에 준하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데, 이미 확정된 결과를 얻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버리려 할 자가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만은 받을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자라면 모르겠지만,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도 없는 자가,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구원받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그만큼 위험한 것도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70], 성령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71] 그의 구원을 확증하시지만[72], 그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을 거스릴 수 있다.[73] 말년의 다니엘이나 바울과 같이 모든 시험을 마치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된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셨음을, 곧 그가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수많은 죽음의 위험을 지나며, 아들의 형상을 닮은 자가 되기를 선택할 자였음을, 그에게 알게 하실 것이다. 바울조차도 그의 생애 동안 자신이 끝까지 하나님 안에 있을 것임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안에 계신 성령하나님께서 그가 버리운 자가 아님을 증거하셨을지라도[74], 그는 자기 몸을 쳐야만 했고[75], 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천사를 허락하셔야 했다.[76]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며[77]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78]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았지만[79],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중의 괴수이며[80] 오직 은혜로만 자신이 하나님의 의에 있을 수 있음을 알았다.[81]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모든 시험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할 자임을 미리 아시고 그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로 미리 예정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사실을 죽기 얼마 전까지 알 수가 없었다.[82]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예정하신 자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물며 어떤 자가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도 않고, 시험을 통과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자라면, 비록 죄사함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 때 그가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알 수 있겠는가.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결국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 베드로는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했고 가룟유다는 차라리 나지 않을 뻔한 것이 좋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셨고, 가룟유다에게는 유다가 주 예수님을 팔 것을 주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며, 주 예수님을 파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께선 둘에게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최선의 기회들을 주셨다. 이 때 하나님께선 둘에게 각자의 선택이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절대적인 결국을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조건적인 결국을 알려 주셨다. 비록 이들은 주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했지만 받아들였다면 이들의 운명은 충분히 바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선 이들이 주 예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런 의미에서는 조건적이 아니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하나님께선 사랑의 계명으로 통치받는 피조계를 의도하시고 창조를 시작하셨다.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랑이 강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만약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절대적인 결말을 알려주신다면,(멸망이든 구원이든) 계명에 대한 반응에 자유로운 의지 이외의 다른 강압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고, 제한된 것만 보고 생각할 수 있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도에서 벗어나므로 절대적인 결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말씀해 주시지 않으실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상대적인 결국, 곧 개인의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결국은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록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피조계의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를 미리 선포하시고, 그대로 이루신다. 아들 안에 있는 누구든지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피조계에 선포하셨으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들이 아들 안에 끝까지 머무르는 한, 구원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범죄하면 반드시 죽는다 하셨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피조물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아들을 믿는 피조물들은 반드시 계명을 지키게 되고, 아들을 믿지 않는 피조물들은 반드시 범죄한다. 살고자 하는 피조물들은 반드시 아들을 믿어 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미리 말씀해 주신다면 아들을 믿는 이 선택에 왜곡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의지에 강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선택은 사랑으로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끈이다. 자유의지가 침해받는다면 사랑을 통한 연합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선택의 결과를 알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자신이 결국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를 미리 아는 상태에서 다른 것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소용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 선택은 자유로운 선택이 되지 못한다. 사랑으로 연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결말을 내게 알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먼저 내 손을 놓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의로 부르시기 위해 최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하실 뿐이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나는 구원에서 떨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예지예정 안에 있는 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로 불러 주신 것이 곧 나의 구원을 확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성령하나님을 근심소멸시켜 드릴 수도 있기 때문에 성령하나님께서 내게 임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셨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도중에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할 것을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사, 아들을 믿어 죄사함을 얻게 하시고 성령하나님께서 임하셨을 수도 있다. 최종적인 절대결과는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절대적인 결과를 미리 아실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미리 아신대로 즉시 심판하시거나 구원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피조물들은 그 피조물들이 왜 심판받고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납득할 수 없고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신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조물을 왜 심판하셔야 하며 왜 구원하셔야 하는지 피조계에 밝히 드러내셔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는 어떤 삶을 사는지는 알 수 있지만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자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예정하신 자처럼 산다면 내가 예정하신 자였음을 최후에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최종적인 예정은 알 수 없다.

  그러면 지금 내가 죄사함 받았음을 알 수 없다는 뜻인가. 아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신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증할 수 없다면 나는 버리운 자다. 그러나 비록 죄사함을 받았을지라도 나는 성령하나님을 근심케 해 드릴 수도 있고 소멸할 수도 있고 성령하나님을 거스릴 수도 있고[83] 심지어는 훼방할 수도 있는 자이다.[8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신한 바울조차도 죄의 소욕이 있는 육체 안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를 쳐 복종시켜야만 했고, 주 예수님께서도 바울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사탄의 가시를 주셔야만 했다. 성령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해도 나 스스로 아들을 거역함으로 구원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내가 하나님께서 예지예정하신 자가 아님을 피조계에 증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을 믿고 소망과 담대함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을 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것을 우리가 미리 알고 안심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두른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러면 예정하신 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 글을 주신 목적은, 비록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의 위험을 당하여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자처럼 느껴질지라도, 결코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버림받은 것 같은 이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아들 안에서 세상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부딪혀 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이다. 이들은 아들 안에 머무름으로 구원 안에 있는 자들이고, 이들이 끝까지 아들 안에 머무른다면, 아들의 사랑과, 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누구도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예지예정자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실 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라고 권면했다면, 그 안에는 조건이 들어 있을 것이다. 바로 아들을 향한 믿음이다.[85]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그 예정은 유효한 것이다. 만약 내가 도중에 아들께로부터 돌아선다면, 나는 아들을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아들을 선택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자가 아닌 것이다.

 

VI. 예정하신 자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i.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예정하신 이유는 그가 반드시 아들을 영접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자를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이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첫열매들이 나오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이 첫열매들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

계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사1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자는 없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뜻을 거스리지 못한다.

4: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아들께서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아들께서 닫으시면 열 자가 없다.

ii. 예정하신 자들은 끝까지 아들을 따른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께 주신 양은 절대적으로 아들을 따른다. 아들께서는 이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아버지께서도 이 양들을 붙드신다. 하나님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들 안에서 예정하신 자들을, 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예정하신 자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따른다.[86]

살후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교회로 부르셨으나 이들이 전부 택하신 자들은 아니다. 누가 택한 자이며 예정하신 자인지, 누가 가라지이며 배신할 자인지는 시험의 때에 갈라질 것이다. 그러나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교회의 성도들 모두를 마치 전부가 다 택하신 자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인 것처럼 부르기 때문에 혼동할 수 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이나 그에 준하는 소중한 것들을 버리지 않는 자는 왕 같은 제사장도, 신부도, 증인도 될 수 없다.

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택하신 자들을 부르신다고 했는데[87] 그러면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은, 택하신 자도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자가 다 택하신 자들은 아니다.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으나 저버릴 자들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을 자들을 예정하셨으나 예정하신 그들과 함께 그물에 잡으신 것이다.[88]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이길 자들만 택하셨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아들 안에 있는 자만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아들 안에 있을 때에만 그는 택하신 자이며 아들을 벗어나면 택하심에서도 벗어난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 자만을 택하신 것이고, 우리는 그가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음으로 그가 택하신 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많은 이들이 청함을 받을지라도 아들 안에서 예정하신 자만 택함을 받고, 예정하신 자들은 자신들이 택함을 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행동으로 피조계에 증명한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정하신 자 곧 택하신 자가 아니면 부르셨을지라도 떠나간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정하시지 않으셨어도 성령으로 시작할 수 있다. 정하시지 않으신 자들은 성령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육체로 마치게 된다.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탓소:임명하다)된 자는 다 믿더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들은 다 믿는다.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도중에 아들을 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거절할 자들이 억지로 영생을 얻도록 정하시지 않으신다. 아들을 영접할 자들임을 아셨기 때문에 정하신 것이다. 아들을 영접할 자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면 아들을 영접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영접할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아들을 영접하고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도 자신의 공로가 아니므로 자랑할 수 없고[89], 심판받은 자들도 자신의 선택이므로 핑계댈 수 없다.[90]

iii. 아들 안에서 예정하신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에클레고마이:선택하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프로오리조:미리결정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선 아들을 선택할 자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아신 그들을 선택하사 양자로 입양하시기로 미리 결정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위하여 피조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들의 통치에 복종할 자들만을 남기실 것이다. 아들께서는 사랑으로 통치하시므로 범죄하지 않는 피조물들만을 남기실 것이다.[91]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아들을 선택할 자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을 이미 아시고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에[92]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시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왜 그를 선택하셨는지를 다른 피조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에게 시험을 허락하시고[93] 역시나 그는 시험을 통과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사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신 것이지[94], 하나님을 거절할 자를 억지로 끌고 오셔서 받지도 않을 은혜를 받게 하시고 강제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뜻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들을 따를 자를 미리 아시고 그를 선택하셨다는 뜻이겠으나[95],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면 택한 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96]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러한 선택을 할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예정하셨음을 알게 되겠지만[97], 내가 시험을 통과하지도 못했는데 아무 근거 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으므로 나는 무조건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98] 아버지께서는 누가 아들을 선택하고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 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선택은 실패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어떤 선택을 할 지를 알 수 없다. 한 때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던 자였더라도 언제 하나님을 떠나 멸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 안에 있다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이다.[99] 앞에 놓인 확실한 운명은 알 수 없을지라도 지금 하나님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100] 비록 나중에 하나님을 떠나 죄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초청의 은혜는 받았으나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택하심은 받지 못하였음이 드러나게 되겠지만[101], 그가 아들 안에 있는 동안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을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보장하실 것이다.[102]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피조계가 있게 하시기 전에 이미 피조계의 창조의 완성을 위해 십자가를 작정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들의 통치에 복종할 자들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그러면 피조물들의 선택이 공로인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을 공로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심판을 피한 피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심판받을 피조물에게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가.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똑같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 그 사랑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공로로 내세워 심판받을 피조물의 죄악을 비난할 수 있는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에게 줄을 던졌다. 그 줄을 잡으려고 선택한 것이 공로인가. 줄을 던져주신 것 자체가 은혜이며 각자는 자유의지로 그 줄을 잡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잡는 자는 은혜를 받는 것이고, 잡지 않는 자는 은혜를 거부하며 헛되이 하는 것이다. 또한 잡고 살아난 자에게는 먹을 것이나 따뜻한 음료의 은혜가 더해질 수 있고 나아가 일할 수 있는 은혜도 더해질 수 있다. 물에 빠진 자가 스스로 줄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은혜로 던져준 줄을 잡는 것은 믿음이다.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십자가가 없다면 선택도 없다. 십자가가 바로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어떤 행위도 십자가의 은혜를 통과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후에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선한 행위는 전부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은혜이다. 십자가를 선택하도록 도우신 것도 은혜이지만 은혜는 개인의 선택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은혜는 개인의 의지를 고려해서 주어진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받아들이는 피조물들을 구원하시기로 미리 작정하셨다. 곧 아들 안에서 구원을 예정하셨다. 누구든 아들 안에 있으면 구원하실 것이며 아들을 거절하면 심판하실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누가 아들 안에 있을지, 누가 도중에 아들을 거부할지, 누가 처음부터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아시고 각 피조물의 최종절대결과를 아신다. 그러나 공정한 심판을 드러내셔서 피조계에 공의를 세우시기 위해, 피조물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시지 않으신 채로 심판이나 구원을 행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반드시 각 피조물들의 선택을 피조계에 드러내사 구원하실 피조물들을 왜 구원하시는지, 심판하실 피조물들을 왜 심판하시는지를 나타내시고 심판과 구원을 행하실 것이다.

iv. 전도와 예정

  그러면 예정하신 자는 결국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므로 전도는 필요 없는가. 그럴 수 없다. 예정하신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말씀을 듣고 나오는 자들 중에 누가 끝까지 아들의 통치에 복종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중에 있을 알곡과 좋은 고기를 통해 영광받으실 하나님을 위해 전도해야 한다.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물론 예정하신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아셨으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시고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내가 전도를 포기하면 나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이나 글들을 사용하셔서라도 복음을 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은혜를 주셨을 때, 내가 그 은혜를 받아 전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내게 전도하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는 모른다. 예정하신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또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심판받아야 할 자들의 죄를 드러낼 수 없다. 심판받을 자들은 아들을 거절하는 것으로 자신의 심판을 확정한다.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이 아들을 거부하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아들을 영접하지 않는다. 아들을 위해 피조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생명을 존속시키셔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을 받는 자들과 거절할 자들이 구분되어 드러나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도 함께 알게 된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함을 보게 되고, 하나님께서 공정하시지 못하시다는 오해를 하지 않게 된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러면 어차피 예정하신 사람들만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하여 구원받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들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누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고 누가 하나님을 배신할 것인지는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 모두가 교회에 있을 수밖에 없고, 알곡과 가라지, 슬기로운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 의인들과 악인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미리 아시고 구분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피조물들 중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절할 자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 하나님을 받아들이다가 유혹이나 핍박이 오면 배신할 자들도 있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도 가룟유다가 사탄에게 속하여 배신하고 자살할 것까지 미리 아시면서도 유다를 받아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들만 부르시지 않으신다. 일단 고기를 다 잡은 후에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나누신다.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13:50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주 예수님께서는 경고로 기회는 주셨지만 유다의 자유로운 선택을 더 이상 방해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의 선택을 드러내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그를 구원하시고 왜 그를 버리셔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든 피조물들이 납득하게 하셔야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피조물들이 알 수 있다.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바울이 사울로 있을 때 누가 사울을 예정하셨을 줄 알았겠는가.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바울조차도 죽기 얼마 전까지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몸을 쳐 복종케 했다. 예정은 사람에게 주신 단어가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기쁘게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께 유용할 것을 미리 아셔서 미리 정하시고 부르셨다 해도 그것은 본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가 은혜를 받을 자임을 아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본인이 은혜를 받기로 선택해서 그에게 은혜를 부으신 것이 아니다. 그가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에게 은혜를 부으신 것이다. 은혜를 받을 자에게 은혜를 부으셨다 하더라도,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 받아들일 자였다 하더라도, 그냥 죽을 뿐이다.

  내가 은혜를 부어주시면 받을 자이기 때문에 내게 은혜를 부어 주셨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보다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내게 집중한다면, 자기 의를 믿고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는 자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103] 의를 행했어도 의를 믿고 악을 행하면 죽을 뿐이거늘, 하물며 의를 행하기는 커녕 은혜만 받아놓고 그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그 결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내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셨다. 내가 은혜받기로 선택할 것이 중요하겠는가. 만약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에 합당한 감사와 충성으로 화답하지 못할 자라면, 나는 언젠가는 죽게 될 자이며, 예정하신 자가 아닌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내게 은혜를 부어주셨다고 생각할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은혜를 부어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혹 한 두 번은 부어 주실지라도,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여전히 죄악을 선택할 자라면, 그 이상의 은혜는 받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전도는 그대로 두면 죄로 인해 멸망할 사람들을 하나님의 예정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전도는, 결국은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예지예정하신 자들을 부르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전도할지라도 그 가운데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들만 구원받을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예정하신 자이지만, 예정하심을 받은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는 것이 공의를 깨는 것이 아님을 피조계에 증명해 내야 한다.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들을 믿고 따르는 자임을 아들의 통치에 복종하는 열매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신의 죄를 사하셨음을 믿고 그 믿음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한 자들만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들이다.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시면 피조계의 죄와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아버지께서 이끄시지 않으시면 아무라도 아들께 올 수 없다. 아버지께서 아들께 주시는 자들을 아들께서는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 아들께 온 자들은 반드시 구원하신다. 예지예정자들은 반드시 구원받는다. 이들은 끝까지 아들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지예정자 이외의 전도를 받은 나머지는 죄사함을 받아 구원의 기회를 받았으나 결국은 하나님을 거절할 자들이다. 전도는 멸망할 사람들에게 주님을 소개하여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돕는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죄사함을 받았어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배신하기로 선택할 나쁜고기, 가라지, 미련한 처녀들, 악인들의 구원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그러면 아들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다 아버지께서 아들께 보내신 자들인가. 그렇지 않다. 가룟유다도 있었고 다른 많은 제자들도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믿고 죄사함 받았으나 의의 열매를 내지 않는 수많은 교인들도 있다. 이들은 가라지, 나쁜고기, 미련한 처녀들, 저주를 받은 자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들,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 지옥의 자식들인 것이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가룟유다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었다.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13: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라지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라 원수가 교회에 뿌린 자이다. 가라지들을 통해 교회를 타락시켜 세상과 하나되게 하기 위해 뿌리는 듯 하다. 따라서 교회에는 예정하신 자들과 가라지들이 같이 있다. 예정하신 이유는 예지하셨기 때문이므로 결국, 예정하신 자가 되느냐 가라지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은 예정하신 자임이 증명되게 될 것이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산다면 가라지임이 증명되게 될 것이다. 누가 예지예정자인지 가라지인지 하나님께서는 아시지만 우리는 모른다. 바울과 같이, 내가 예지예정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그대로 산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에, 내가 예지예정자였음이 증명되게 될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는 상관 없이 세상의 쾌락만을 좇아 산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므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가라지였음이 증명되게 될 것이다. 내가 성령하나님 안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사는 동안에는, 내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음을 성령하나님께서 보증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성령하나님을 근심시켜드리고 소멸한다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고 구원에서 벗어난 자임을 내 행위가 증명할 것이다.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만약 예정하신 자는 결코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면, 혹은 실족할지라도 베드로나 침례요한과 같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면, 애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럴 수 없다. 누가 예지예정자인지 누가 버림받을 자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주 예수님께서도 거절할 것을 아시면서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셨고[104], 사도와 선지자들은 거절당하여 죽을 줄을 알면서도 사랑으로 불타 진리를 전했다.[105] 예정하신 자라면 애타는 사랑으로 내미는 손을 다시 잡을 것이고, 예정하시지 않으신 자라면 결국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손을 내미는 것이 예정하신 자 곧 회개할 자에게는 사랑의 기회가 될 것이고, 예정하시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의 확정이 될 것이다. 회개의 나팔을 듣지 않을 자에게 나팔을 불지 않으면,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겠지만, 나팔소리를 들어도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심판대 앞에서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팔소리를 듣지 않을 자에게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가 죽는다면 나팔수는 무죄이고, 나팔소리를 들을 자에게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가 죽는다면, 나팔수는 유죄가 되는가. 그럴 수 없다. 나팔수는 나팔을 불지 않은 것 자체가 유죄이다.[106] 나팔을 부는 것은 죽을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나팔을 불지 않으면 죽을 것임을 알면서 죽을 생명을 살리지 않는 것이 어찌 죄가 아니겠는가. 그가 나팔소리를 들을 자인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만 아실 것이다. 그가 나팔소리를 듣고 회개할 자일 수도 있지만, 끝까지 거부하고 멸망할 자일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 자인지는 관계 없이, 나팔수는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팔을 불어야 한다. 나팔소리를 들어도 죽을 자는 죽게 되겠지만, 죽어가는 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팔을 불라 하신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형제의 생명살리기를 즐겨하지 않는 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구원과 심판이 진리를 전달하는 자에 의해 뒤바뀌는가. 진리를 전달하는 자가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서 듣지 못한 자들이 멸망하고, 진리를 전달하는 자가 제대로 전달해서 들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이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107] 말씀을 듣지 못해 죽은 자라 할지라도,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일까지 계산에 넣으시고 죽게 하셨을 것이다. 그가 달린 심판의 저울에 그의 의의 무게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108] 물론 죽은 자에게 기회가 끝났기 때문에 그가 진리를 들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그가 말씀을 들었어도 죽었을 것이라 해도, 경고자의 직무태만과 사랑 없음이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나팔수가 나팔을 불지 않았더라도, 살 자에게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 것이다. 정말로 살 자에게는 나팔을 불지 않는 나팔수가 아닌 나팔을 부는 나팔수를 보내셨거나 언젠가는 만나게 하셨을 것이다. 나팔수의 행동에 따라 예지예정자의 구원이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그가 정말로 살 자라면, 나팔을 부는 나팔수를 찾아다녔거나, 나팔을 들을 수 있는 다른 기회를 허락받았을 것이다.

v. 예정과 구원의 기회에 대한 추측

  말 그대로 추측이다. 예지예정에 대한 위의 견해가 맞다는 가정 하에 자연스럽게 생각해 본 것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생각을 확장해 보는 것은 확실한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개인에게 이렇게 나타날 것이라고 인간의 입장에서 추측해 본 것이다.

  하나님께선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아시고 창조를 시작하셨다. 미리 아신 하나님을 선택할 자들을 미리 정하사,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슬람권이든 이스라엘이든 하나님을 선택할 자들은 어느 곳에 태어나게 하시든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도 수많은 우상숭배자들이 있었고 가나안 족속들 중에서도 라합과 같은 여인이 있었다. 어떤 환경에 두신다 해도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만물에 미리 보이신 신성과 혹 드물게라도 듣게 되는 복음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이라 믿는다. 혹 복음을 듣지 못하는 시대에 태어나게 하셨다면 1000년왕국에서라도 아들을 선택할지 거절할지의 기로에 서게 하실 것이고 그는 반드시 아들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들을 선택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를 미리 정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창조를 완성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는 것이 합당함을 증명하시기 위해, 그의 선택을 피조계에 드러내신다.

  모든 사람 각자의 출생과 사망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그렇다면 이슬람권에 태어난 사람과 한국에 태어난 사람에게 주신 은혜는 같은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나중 은혜는 처음 은혜를 받은 자들이 받을 수 있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성령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교회에 나오게 하신 은혜를 받은 자들이 교회에서 주시는 각종 은혜들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들에게 이슬람권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들에게보다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을 때 그것을 받을 자들을 한국에서 더 많이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할 자들을 한국에서 더 많이 태어나게 하시고 한국에 더 많은 은혜를 부으시고 받게 하셔서 한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인 측면에서 생각한 것이다. 내적인 측면에서는 이슬람권이나 북한의 성도님들께 더 많은 은혜를 부으사 극심한 핍박을 견뎌내게 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적은 은혜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용사 중의 용사들을 이슬람권이나 북한에서 태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빛을 크게 나타내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000년왕국에서 이들이 받을 유업은 그만큼 클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할 자임에도 한국과 같은 복음을 접하기 쉬운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시지 않으시고, 특별한 뜻이 있으셔서 이슬람권에 태어나도록 예정하신 자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수많은 핍박과 유혹 가운데서도 주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주 예수님의 영광을 크게 반사할 자들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최전선에서 주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용사들이며 특별한 상급을 받을 자들이라 믿는다.

  피조물들이 보기에 누구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허락하시고 누구에게는 거의 기회를 허락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서 각 피조물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최대의 빛을 비추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유의지를 주신 피조물들에게 주신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면 심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데-형벌의 차등은 있다지만-불못에 타는 것은 매한가지라면 하나님께서 공평하시지 않으신 분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비록 사람의 보는 것과 천사들이 보는 것과는 다를 테니 천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공평하심을 충분히 알게 하실 지도 모르겠다.) 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아들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신 피조물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허락하신다고 믿는다. (만약 이 세상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에는 1000년왕국에서라도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양심의 법이 일시적으로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이슬람권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와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에게 부으신 은혜가 다르다. 따라서 한국에서 태어난 자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이슬람권에서 복음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황에 태어나게 하시고 그에게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자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따라서 어차피 하나님을 거역할 그가 한국에서 태어난다면 그에게 주어진 더 많은 기회로 인해 더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역할 자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탄의 영역에서 태어난 것도 심판을 가볍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라고 생각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면 아들을 거절할 자들을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은, 그들을 차별하신 것이 되니 조심스레 추측할 일이다. 아무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심판을 가볍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오해받을 수 있다. 어쩌면 한국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의지를 가진 자들만을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실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의 의지 내에서 최선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말이다. 이슬람권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들에게는 이슬람권에 부으시는 은혜가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의 최선이고,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들에게는 한국에 부으시는 은혜가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의 최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역시 추측일 뿐이다.

  큰 심판이든 작은 심판이든 존속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고 구원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심판받을 자들의 형벌에 있어서는 차등을 두시더라도 아들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는 일에 있어서는 어느 한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아들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거나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어떤 인간에게는 복음을 받기 쉬운 환경을 주시고 어떤 인간에게는 복음을 받기 어려운 환경을 주신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의지를 침해하시지 않는 최선의 범위가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 각자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 양심을 주셨다. 사탄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시지 않으신다. 나타내셔 봤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은 어차피 영접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절할 자들임을 미리 아시고 그를 이슬람권에서 태어나게 하사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적게 하셔서 어차피 거절할 그에게 더 이상의 강권을 하지 않으심으로 그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심과 동시에, 그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적게 하사 그에 대한 심판 역시 가볍게 하시려 하신 것이라 생각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슬람권이나 복음을 듣기 어려운 곳에 태어나게 하신 자들은 대개 저주받은 자들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자들임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들이 비교적 가벼운 심판을 받게 하시면서 그 나름대로 그들을 사용하시려고 이슬람권에 태어나게 하시기로 뜻하신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그러면 반대로 복음을 듣기 쉬운 곳에서 태어나게 하신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들이 그것을 선택하였기 때문인가. 그런 뜻 역시 아니다. 본인들이 그것을 선택한 공로가 아니라 그들이 선택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 선택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올려드려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기회를 주신 것이라 믿는다.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한 것과 선택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을 선택할 자라도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다면 그냥 죽을 뿐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피조계를 공의롭게 통치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선택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을 듣기 쉽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선택할 자이므로 그에게 많은 복음의 기회를 주셔도 그것은 싫어하는 그를 강압하신 것이 아니다. 그가 완강히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셨을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는 하나님을 완강히 거절하던 자가 아니었는가. 그런 그를 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게 하셨는가. 사람이 보기에는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보셨다고 믿는다. 만약 바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바울과 똑같은 기회를 주셨다면, 그들은 바울처럼 회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느라 바울처럼 헌신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을 창세 전에 바울 안에서 발견하시고, 역시 창세 전에 그를 미리 정하사 잠시 유대교에 미쳐있게 허락하시다가 때가 되자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신 것이라 믿는다. 바울은 잠시 방황할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할 자였던 것이다.

  죄사함을 받았으나 후에 유혹이 생기거나 핍박이 사라지자 도중에 타락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들이 아닌가. 하나님의 예정은 도중에 타락할 것까지 염두에 두시고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가룟유다와 같이 도중에 타락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구원하실 자들이 구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에는 타락할 자들이었음을 환경을 통해 드러내신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물론 죄사함받은 자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므로 구원받을 자가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또한 하나님의 예정은 도중에 회개할 것까지 염두에 두시고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바울과 같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회개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예정에는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라지는 알곡이 될 수 없는가. 단순히 가라지처럼 보이는 알곡이었거나 알곡처럼 보이는 가라지였을 뿐인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좋은 씨를 심으셨다. 좋은 씨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라지가 있다. 이 가라지는 좋은 씨가 변한 것이 아니라 원수가 새롭게 심은 씨이다. 따라서 바울과 같이 가라지처럼 보이는 알곡이 있고 가룟유다와 같이 알곡처럼 보이는 가라지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알곡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알곡이 될 수 없다. 단지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성령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성도들이 타락해서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던 시간들에도 그가 가라지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 중에도 가라지들이 있다는 뜻인가.

  가룟유다와 같은 자가 있고 니골라와 같은 자가 있고 데마와 같은 자가 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들이 있고 마가와 같은 자들이 있고 바울과 같은 자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도적이었고 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기록이 없다. 아마도 많은 시간동안 주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주님을 사랑한 적은 없었던 듯 하다. 결국 처음부터 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한 사람으로 판명되었다. 유다는 가라지였던 것이다. 니골라는 사도들 앞에 안수받고 세워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발람과 같이 이스라엘을 행음하게 하는 교훈을 가르치는 니골라당의 당수로 변한다. (이 니골라가 그 니골라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이 같고 지역과 시대가 비슷한 것을 감안하여 동일인물로 가정한다.) 니골라가 스데반이나 빌립과 같이 하나님께 충성되었던 시절에 누가 그를 가라지로 생각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그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던 죄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 역시 가룟유다와 같은 가라지임이 판명되었다. 처음에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사역에 힘을 쓴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났던 데마와 같은 사람이 있다. 데마는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 편지 수신자에게 문안할 정도로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기던 자였으나, 디모데후서에서는 데살로니가로 도망쳤다. 아마도 내 생각에 하나님께서는 데마를 구원하셨을 것이다. 다시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시지는 않으셨을지라도 적어도 그의 헌신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그의 혼만큼은 구원하셨을 것이라 추측하나 성경에 기록하시지 않으셨으니 잘 모르겠다. 니골라와 같이 멸망한 자가 있는 것을 보면 아닐 수도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비슷한 경우인데, 더 이상 이들을 살려두셨더라면 아마 이들이 더 큰 범죄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것이기에 이들의 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체의 생명을 거두셨다고 믿는다. 마가는 잠시 사역에 대한 열정이 식었었으나 다시 회복시키셔서 바울의 사역에 유익한 자가 되었다. 가룟유다나 니골라는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했었던 자들이지만 후에는 가라지임이 판명되었고, 마가는 물론이고 (아마도)데마나 아나니아 삽비라는 가라지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누가 그가 알곡인 줄 알았겠는가. 이것을 볼 때, 지금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보이는 성도들 중에도 가라지들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또한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 중에서도 알곡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알곡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알곡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 예수님을 따른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이들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알곡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만약 알곡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갈 자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그를 알곡으로 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알곡이 가라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가라지가 알곡이 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가라지가 알곡이 되게 하기 위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인가. 만약 누가 가라지인지 알 수 있다면, 또 가라지를 구원하기 위해 말씀을 전하려 한다면, 말씀을 전해도 소용 없을 테니 가라지만 빼고 알곡에게만 말씀을 전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 가라지가 알곡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누가 가라지인지 알곡인지 우리는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가라지가 가라지로 증명이 되기 위해선 가라지의 짓을 해야 한다. 가라지의 특징은 형제를 실족하여 죄짓게 하며 불법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면 이들은 말씀전달자를 쫓아내거나 거부하며 피하여 말씀이 없는 어둠으로 모인다. 단으로 묶이는 것이다. 반대로 알곡은 빛인 말씀을 찾아다닌다. 따라서 말씀을 듣는 알곡과 가라지를 각각 따로 모아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심판받을 가라지들은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임을 증명하여 심판받게 하기 위해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님께서도 가라지를 뽑기 위해 알곡까지 뽑힐 위험에 두시지 않으신다. 알곡은 반드시 구원하신다. 가라지도 아들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던 자들이다. 이들이 죄사함을 받았음에도 말씀을 거절했거나 피하여 어둠으로 숨은 사실이 증명이 되어야 가라지에 대한 심판이 공정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겠는가.

  혹 이슬람권이나 한국이나 불신가정이나 신앙가정이나 어느 곳에 태어나게 하시든 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슬람권에 태어났다면 아들을 거절할 자를 믿는 가정에 태어나게 하셔서 아들을 선택하게 하시고, 한국에 태어났다면 아들을 선택할 자를 이슬람권에 태어나게 하셔서 아들을 거절하게 하셨을 수도 있을 것인가.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아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받았음에도 아들을 거절한 자에 대한 심판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심판보다 더 엄중할 것이며, 아들을 선택하기 힘든 상황에서 적은 기회를 받고 아들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심판은 보다 많은 기회를 받고도 아들을 거절한 자에 대한 심판보다 가벼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이슬람권이 아들을 영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간의 생각을 기초해서 추측한 것이므로, 실제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슬람권에서 태어난 것이 한국보다 아들을 영접하기 더 어려운 환경인지는 하나님께 여쭈어야 하겠다. 혹 이슬람권이나 한국에서 태어나는 것도 인간은 알 수 없으나 개인의 선택이 개입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개인의 구원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 지는 제한된 인간의 생각으로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심은 결코 변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이 모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로운 방법으로 각 개인에게 아들을 선택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주셨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뜻하신 작정 안에서 그리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각 개인에게 아들을 선택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다면 역시 다른 공정한 기준으로 그 차이를 메꾸셔서 최종적으로 볼 때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 공정한 은혜를 받았음을 알게 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의 공정하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자가 없을 것이다.

vi. 예정과 경고자의 의지에 대한 추측

  말 그대로 추측이다. 위에서 설명한 예정에 대한 관점을 확장하여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것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주의해서 보라. 두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Ω 예정과 경고자의 의지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3: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3: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3: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주장1 주장2
살 수 있었던 자가 죽은 것이다. 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죄인은 경고를 받았더라면 살아서 결국에는 구원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고자의 죄로 인해 그는 경고를 받지 못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자가 죽은 것이다. 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죄인은 경고를 받고 잠깐 살았을지는 모르나 어차피 결국에는 심판에 들어갔을 것이다. (경고를 받았다고 해도 다 사는 것은 아니나, 만약 그가 경고를 받고 살 자였다면 하나님께선 그에게 반드시 경고를 받게 하셨을 것이다.)
경고를 받고 회개하여 아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자가, 경고를 받지 못해 아들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죽었다. 경고자의 의지가 다른 이의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①경고를 받고 죽은 죄인(경고자무죄)
②경고를 받고 산 죄인(경고자무죄)
③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살 죄인(경고자유죄)
④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죽을 죄인(경고자유죄)
이 주장에서는 이 4부류의 사람들 중 ③번을 인정한다.
그 때 경고를 받고 살았던 받지 못하고 죽었던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결국을 아셨고, 결국에 그는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할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정하시지 않으셨다는 뜻을 담고 있는 주장이다.
죽은 자의 의지만 예정에 반영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시지 않으신 이유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경고를 받고도 죽은 죄인은 있을 수 있으나, 살 죄인 중에 경고를 받지 못한 죄인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살 죄인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가 경고를 받을 자임을 아시고 그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셨을 것이며, 그가 경고를 받고 살게 하셨을 것이다.
①경고를 받고 죽은 죄인(경고자무죄)
②경고를 받고 산 죄인(경고자무죄)
③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살 죄인(경고자유죄)
④경고를 받지 못하고 죽은 죽을 죄인(경고자유죄)
이 주장에서는 이 4부류의 사람들 중 ③번을 완전히 부정한다.
경고를 받을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가 경고를 받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가 죽기 전에 경고를 받고 살게 하셨을 것이다. 그가 끝까지 살 자라면, 그가 살 자인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미리 정하사 살게 하셨을 것이다.
살 자든 죽을 자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죽게 되나, 하나님께서는 살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살게 하시고, 죽을 자에게는 정하신 기회가 끝나면 은혜를 거두셔서 죽게 하신다.
이 주장대로라면 죽은 자 외에 경고자의 의지가 예정에 반영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예정이 제3자인 경고자의 의지에 의해 바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이 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예정은 결과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피조계에 나타내시기 위해 미리 정하신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경고자의 의지뿐만 아니라, 경고를 듣지 못한 자에게 베푸실 기회의 한계까지 다 아시고 그의 구원여부를 정하셨기 때문에 오류나 우연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경고자는 경고를 하지 않을 것이었고, 범죄자는 경고를 듣지 못할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는 경고를 듣지 못한 것을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계에 다다른 회개의 기회를 이미 받았다.
 경고자의 경고를 받는다면 반드시 살게 될 자라면 회개의 의지가 있는 자이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회개할 자가 경고를 받지 못할 수 있는가'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으므로 이 주장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은 기회의 한계 내에서 경고를 받고 반드시 살 자였다면,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따라 결코 죽을 수 없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육체의 혼이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죽었어도 육체는 그대로 살아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한다.
살 선택을 할 자들이 누구인지는 하나님께서 그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아신다. 경고를 받지 못해 회개하지 못함으로 죽었다면, 그는 어차피 죽을 자였거나 혹 기회를 받지 못하여 다시 시험을 받아야 하는 경우일 수 있다. 여기서 경고를 받았거나 받아야 하는 자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경고를 하는 자이다. 이웃을 사랑함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경고하는 순교증인의 존재 그 자체가, 경고를 받고 살게 될 일반적인 성도들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편애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순교증인은 계명의 진실함을 증명할 직접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경고받아 사는 자나 받지 못해 죽는 자보다, 직접적으로 사탄의 심판을 확증할 자는, 경고하는 자인 것이다.
또한 경고자는, 아무도 그 경고를 받지 않는다 해도 경고를 해야 한다. 경고를 받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합당함 역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고가 없다면 누구를 구원하고 누구를 심판해야 할 지를 알 수 없으나, 일단 경고가 선포되면, 아무도 경고를 받지 않으므로 모두가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로 나타난다 해도, 심판받아야 할 자들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경고는 구원의 기회도 주지만 동시에 심판도 확정한다. 모든 순교증인들이 경고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순교증인들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계명의 진실함을 드러내기에, 계명을 어기는 자들에게 경고가 될 수 있다.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경고하지 않는 자는 죽게 된다. 이웃피조물들이 그의 행동을 보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만약 이웃을 살리기 위해 경고하지 않는다면, 그는 죽어가는 이웃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경고를 받아야 할 이웃이 회개할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경고자를 통해서라도 그에게 경고를 선포하실 것이고 그를 살리실 것이다. 그러나 원래 그에게 경고를 선포했어야 했으나 선포하지 않았던 그 경고자는 죽을 것이다. 이웃피조물들은 그가 죽어가는 이웃을 죽게 내버려 두는 행동을 보았다. 경고를 들어야 하는 자가 회개했든 죽었든, 경고하지 않음으로 이웃을 죽게 내버려둔 행동을, 심판 때에 주 예수님께 그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이웃피조물들이 그의 악행을 전부 보고 있었는데 주 예수님께서 그를 의롭다 칭하시며 구원하시겠는가.

 

  하나님께선 이미 첫열매들을 내실 것을 작정하시고 피조계에 대한 창조를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피조계의 창조는 이미 완성되었고, 정하신 수의 첫열매들은 나왔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정하신 첫열매들은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창조 전부터 완성되어 있고, 단지 천사들과 인간들을 두신 피조계의 시간 속에, 창조의 완성을 위해 피조물들에게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라 믿는다. 경고를 받았으면 살 자들이 경고를 받지 못해 죽을 수도 있는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경고를 받았으면 살 자라면 회개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선 그에게 경고를 받도록 허락하셨을 것이다. 그에게 경고해야 하는 경고자를 새롭게 보내셔서라도. 경고를 듣고 회개할 죄인이었다면, 그는 주 예수님의 양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님의 양이라면 반드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자일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반드시 경고할 경고자를 보내셨거나, 그가 그러한 경고자를 찾게 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던 자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반드시 선택할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죽을 수 없다. 경고자에게 경고를 명하신 것 부터가, 하나님께서 회개하여 살 죄인을 살리고시자 은혜를 부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이 경고를 거절할 자들임을 드러내셔서 심판을 확정하시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경고를 들으면 반드시 살 수 있는 죄인이, 기회가 다 되어서 경고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3: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하나님께서 죄인 앞에 거치는 것을 두시면 죄인은 죽게 된다. 그러나 경고자가 죄인을 깨우쳐서 죄인이 회개한다면 죄인은 살게 된다. 그가 끝까지 살지 도중에 다시 범죄하고 죽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끝까지 살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시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경고자가 깨우치지 않은 죄를 범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마 거기까지가 죄인이 입을 수 있는 은혜의 한계였을 것이다. 죽은 죄인은 경고를 받고 살 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죽은 죄인을 예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죽은 죄인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회개하지 않을 자인 것이다. 혹 잠깐 회개하고 돌이킬지라도, 다시 죄 아래로 들어갈 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 내에서 받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은혜 가운데서, 자신의 죄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는 그에게 허락하신 은혜 가운데에, 경고자의 깨우침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보아, 경고하지 않아 죄인을 죽게 한 경고자를 생각해 본다면, 그 경고자는 살인자이다. 비록 죽은 죄인이 경고를 들었더라도 회개하지 않을 자였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고 판단하실 일이지, 어차피 경고를 들었어도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핑계로, 경고하지 않은 죄 곧 형제의 생명 살리기를 거절한 죄를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경고를 들어야 하는 그 사람이 회개할 자일지 아니면 계속 범죄할 자일지는 경고자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가 경고를 들었어도 회개하지 않았을 자로 나타났지만, 그가 경고를 거절할 자이든, 경고를 듣고 회개할 자이든 간에, 경고자는 충실히 경고를 했어야 하는 것이다. 경고를 들어도 회개하지 않을 자라 할지라도,(경고자는 대개 그가 회개하지 않을 자인 것을 알 수 없다.) 경고자는 경고를 통해서 죄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어야 한다. 비록 경고를 듣고 살 죄인이라면, 그에게 경고를 해야 하는 경고자가 경고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을 통해 경고를 듣고 살게 하시겠지만, 경고자는 그를 살리시기 위해 그를 통해 경고하라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경고를 듣고 살아야 하는 죄인을 살리기를 거절했으므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고를 들어야 하는 죄인이 경고를 듣고 회개할 자이든 경고를 거절할 자이든 간에, 경고자는 그 죄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근실히 경고해야만 했던 것이다. 경고자는 대개 죄인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에게 경고를 해야 하므로, 죄인이 어차피 경고를 거절할 자이므로 그에게 경고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죄를 부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을 생명을 살리기를 거절했으므로 그는 살인자이다. 설혹 죄인이 경고를 거절할 것임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경고를 해야 하며, 때로는 죄인이 경고를 거절할 것을 알고도 경고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109]

33: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거짓 선생들에 의해 죽지 않을 혼들이 죽거나 참 선생들에 의해 죽을 혼들이 살 수도 있는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자는 물론 죽을 혼들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하나님을 배신할 자들은 그들의 배신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물론 그럴지라도 구원을 위한 모든 기회는 허락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되지 못하니까 말이다. 피조물들이 멸망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선택 때문이다. 따라서 죽지 않을 혼들이 죽거나 죽을 혼들이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혼들이 죽은 선생들의 말에 미혹되는 것이고, 살 혼들이 생명의 말씀으로 나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신실하던 성도가 타락하는 것은 그의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 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많은 부분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뿐 아니라 죄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말씀을 들었더라면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있었을 터이나 그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성령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욕을 선택하기 보다 육체의 소욕을 선택함으로 결국 죄를 이기지 못하고 타락했을 것이다.[110] 그러나 그것은 구원받을 자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할 자가 멸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고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신다. 만약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범죄한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를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주셨으나 그가 그것을 거절할 것을 피조계에 드러내셔서, 그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구원받을 자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심판받을 자임을 증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공의롭게 그를 심판하셔야 한다.

20:26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0: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구원받을 자가 진리를 듣지 못함으로 죽을 수도 있는가. 예정하신 자가 죽을 수도 있는가. 말씀을 전달해야 함에도 전달하지 않은 자는 죽는다. 말씀을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욕심의 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두려움의 형태로 나타났겠지만.) 말씀을 듣지 못한 자는 회개하지 못해 죽는다. 그러면 회개하지 못하고 죽은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이 없는가. 그는 말씀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의 양심에도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지 않았는가.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경고를 해 주시지 않으셨겠는가. 세상일에만 바쁘고 하나님께는 게을러서 말씀을 못 보았는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죄를 심상히 여겼는가. 선한 이웃들의 경고나 호소에는 귀를 닫았는가. 오만한 자들과만 함께 있느라 선한 이웃들은 멀리 했는가. 예정하신 자는 죽을 수 없다. 한 때 살아날지라도 도중에 다시 죽을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말씀을 듣지 못해서 죽었더라도 그가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아서 회개하지 못했고 그래서 죽었다면, 왜 말씀을 전하지 않은 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그가 말씀을 들었더라면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경고자의 의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바뀌고 결국은 하나님의 예정이 바뀔 수 있는가. 만약 기회를 줄 의무를 맡은 자임에도 그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 살 생명을 죽게 했다면, 죽인 책임 역시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경고자가 제대로 전달했다면 그가 회개하고 살았을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죽은 자는 예정하신 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회개하지 않고 그래서 죽을 것을 미리 아셨다. 따라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죽을 자가 경고를 듣고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예정하셨기에 벌써 죽었어야 할 그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살았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고 죽을 자를 특별대우해서 살리신다면 그것은 자유의지를 침해하신 것이 된다. 그러면 무엇인가. 죽을 그가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실한 경고자라는 은혜를 주신 것이고, 살 그가 죽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심으로 살 수 있었던 그가 죽은 것인가. 하나님께선 은혜를 받고자 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살고자 하는 자에게 살리는 말씀을 보내신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말씀을 만날 수 있게 하신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신실하지 못해서 듣는 자가 죽었을지라도, 죽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기회는 충분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는 신실한 경고자를 붙이셔서 말씀의 기회를 더 주시고, 어떤 자에게는 제한된 기회만을 주시는 것인가. 공평하신 하나님께선 행한 대로 갚으신다. 만약 살 수 있었던 죽은 자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기회를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다른 방법으로라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기회를 허락하시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여 구원에 대한 자유의지의 범위를 늘렸을 경우, 그 기회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말씀전하는 자가 신실하지 못했더라도, 죽을 죄인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면, 그에 합당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을 것이고, 그가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살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선 그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실한 경고자를 붙이셔서 죽지 않고 산 자는 공의에서 벗어난 더 많은 기회를 받은 것인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런 기회를 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피조계에 증명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을 뻔했지만, 하나님을 결국에는 선택할 자임을 미리 아셨고, 그래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실한 경고자를 만나 죽을 뻔 했으나 산 자는, 그가 경고를 받을 것이기에, 근실한 경고자의 은혜까지 그의 자유의지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 미리 아시고 그를 예정하셨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실하지 못한 경고자를 만나 살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으나 죽은 자는, 그가 경고를 거절할 것이기에, 그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는 최대의 범위가 거기까지였고, 그가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더 보였다면 혹시 달라질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셨고, 따라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지 않으신 것이라 생각한다.

  똑같이 근실한 경고자 밑에 있어도 멸망하는 자들이 있고,(심지어 주 예수님 아래 있었던 가룟유다도 죽었다.) 똑같이 근실하지 못한 경고자 밑에 있어도 살 자들이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하지 못한 경고자 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근실한 경고자 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거부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억지로 더 가까이 다가가시면 그의 자유로운 선택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근실한 경고자를 통해 회개의 경고를 받는 것에도 각자의 자유의지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도 각각의 자유의지에 따라 다르게 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은혜를 거절하는 자는 은혜를 주셔도 받지 않는다. 그런 자에게는 억지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근실하지 못한 경고자는 자기 의지로 회개를 선포하지 않았을지라도, 선포를 듣지 못했으므로 죽은 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회개선포를 듣고 살 수 있는 자가, 선포를 듣지 못해 죽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아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도 포함하셔서 각자에게 베푸실 기회의 분량을 정하시지 않으셨을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경고자가 진리를 선포하지 않음으로, 진리를 들었다면 구원받을 수 있었을 사람을 심판받게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이 경고자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인가. 정말 구원받을 사람이라면 곧 예정하신 자라면, 거짓선지자 밑에서 빠져 나왔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 외에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범죄한 그가 회개하지 못해 죽었더라도, 그것이 거짓선지자가 진리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거짓선지자가 회개선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사람들에 대한 피값을 짊어져야 한다 하더라도, 범죄한 자는 자신의 죄로 죽은 것이고, 혹시 그가 회개선포를 듣고 잠깐은 주저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자였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짓선지자의 말에 미혹되는 자는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고 진리의 사랑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귀가 가려워서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을 듣고 싶어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더 사랑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비록 회개하지 못하고 죽었을지라도, 그들은 평소에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던 거짓말을 좋아했고, 만약 진리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자들이었다면, 죽기 전에 이미 진리를 찾아 거짓선지자를 떠났을 것이다.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일지라도, 거짓선지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끈 데 대한 죄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 범죄하는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범죄하는 삶을 살도록 미혹했다면, 비록 미혹된 자들이 거짓선지자가 아니라도 멸망했을 것이라 할지라도,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당해야 한다. 죽을 자들이 거짓선지자가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죽을 자들이었다 해도, 죽을 그들을 죽인 죄에 대한 심판은 당해야 하는 것이다.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한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모세조차도 반석에 명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석을 침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처음 반석을 치는 것은 십자가이다.[111]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명하는 말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말씀을 주지 않고 계속 죄사함의 은혜만을 전하면 죄와 싸울 수 없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 비록 말씀을 듣는 자들이 거짓선지자의 말을 좋아하여 거짓선지자를 떠나지 않고, 진리를 사모하지 않으므로 자기의 죄로 멸망할지라도, 말씀선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달하지 아니하면[112], 그는 거짓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113]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이럴 수가! 지금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잘못된 가르침을 전달할 자들이 나오게 되다니! 혹시 이 중에도 3년이나 말씀을 들은 인간이 있었을 것인가.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예정하신 자들 곧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택할 것을 미리 아신 자들은 진리에 붙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되는 자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예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8: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지혜 곧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이 진리의 사랑을 입는다. 진리를 찾는 자들이 진리를 들을 수 있는 은혜를 받는다. 진리를 거절하는 자에게 진리를 주시지 않으신다.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진리를 거절하며, 진리를 거절하는 자들은 죄 가운데 멸망한다. 따라서 멸망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진리를 거절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경고자가 경고하는 경고를 듣지 못하고 죽었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경고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좆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경고를 하지 않은 경고자가, 죽어가는 형제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은 죄로 심판을 받게 된다면, 경고를 듣지 못한 경고자는 자신의 죄 가운데 죽임을 당하되, 그가 경고를 듣기를 거절할 것이므로, 그에게 경고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 믿는다. 그가 경고를 들으려 했다면, 경고를 듣기 위해 나아왔을 것이나, 그의 마음 속에는 경고를 듣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경고를 듣는 것이 소용 없었기 때문에, 그가 경고를 듣지 못했음에도 죽게 하신 것이라 믿는다. 만약 그가 경고를 들었더라도 그는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그런 선택을 미리 아시고 그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살후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경고를 받지 않는 자들은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의 경고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경고를 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경고를 듣지 못하게 하신다. 이미 그들은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경고를 듣지 못하고 죽은 죄인들은 경고를 듣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들이 경고를 들을 자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경고를 듣게 하셨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경고를 하지 않은 경고자는, 경고를 하지 않은 죄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죽을 생명을 살리려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하나님께선 가룟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출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 아닌가. 하나님께서 그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를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말씀은 마치 가룟유다가 자신의 출생을 스스로 결정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명백하게는 아니지만, 생각하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피조물들 각자는 하나님 안에서 피조계에 존재하기 전에 곧 비존재로 있을 때에 스스로의 의지로 창조되기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피조물들이 전적으로 창조주의 의지에 의해서만 피조계에 존재하게 되었다면 몰라도 만약 피조물들 각자의 의지가 피조물들이 피조계에 존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면, 피조물의 존재부터 심판이나 구원에 이르기까지, 자유의지를 받은 피조물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더욱 확실하게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하나님의 주권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혹시 하나님께서 비존재였던 피조물들에게 존재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다 할지라도, 존재나 비존재는 전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만 있고 또 없다.

  아들께서는 미리 말씀하신대로 행하신다. 예정대로 행하신다. 누구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을 거스를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피조물들의 의지에서 나오는 선택과 행동을 모두 포함하셔서 뜻을 정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아시고 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며 공의롭다. 가룟유다를 포함한 죄인의 범죄 역시,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을 아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지 않기로 선택할 자라면, 그를 주님을 파는 일에 사용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다른 방법을 예정하시고 그 다른 방법대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말씀을 전달하는 자는 더 큰 심판을 받는다. 그러면 평신도로 있었더라면 구원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자가,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어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함으로, 더 큰 심판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멸망할 수도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멸망할 자가 멸망하는 것이라 믿는다. 주 예수님의 양은 말씀을 듣고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 만약 떠날 자라면, 그가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가 평신도로 남아 있었더라면, 말씀전달자보다 낮은 평신도의 심판의 기준에 혹시 부합하여 구원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아셨다. 그가 왜 말씀전달자로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는데 말씀을 전하는 중책을 맡으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진짜 양이라면 주님의 뜻을 알고 혹시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반드시 평신도의 자리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짓 말씀을 전하면서까지 말씀전달자의 위치에서 오는 풍요를 누리기를 원했고, 그의 그런 교만이 그가 택함받은 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결론은 이렇다. 말씀전달자의 심판은 평신도보다 엄중하기 때문에, 말씀전달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은 자가 평신도로 남아 있었거나 다시 내려왔더라면, 아마도 구원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정도로 겸손하지 못했으므로 평신도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피를 묻힐 그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1]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2]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3]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4]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5]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6]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7]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8]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10]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딤후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11]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12]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13]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14]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5]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6]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17]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18] 딤전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19]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20]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21]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22]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23]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24] 11: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5]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26]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27] 8: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28]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29]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30] 13: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31]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32] 19: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 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33]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4]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5] 9: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36]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37] 벧전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혹은,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38]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39]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40]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고후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1]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42]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43]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4]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45] 30:1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46]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47]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48]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아도키모스:거절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파라디도미:항복하다)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49]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0]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51]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52] 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53]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54]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55]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56]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57]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58]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59]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0] 16:4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61]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62] 12: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63]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64]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65]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66] 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67]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68]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69] 8: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져낼 수도 없느니라

[70]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71]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72]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73] 살전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74]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75]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76]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77]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8]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79]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80]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81]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82]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83]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84]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85]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86]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87]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8]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89]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90]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91]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92]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44:7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요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93]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94]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95]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96] 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97]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98]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99]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00]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101] 22: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102]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103] 33: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104]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105]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06] 33:6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107]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08] 5:25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109]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110]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11] 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112]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13] 32: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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